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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꽃 Jul 31. 2020

다시 그 여름을 내게

<아무튼, 여름>

요즈음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에 푹 빠져 있다. 무한도전 종영 이후 본방송을 찾아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본방송을 찾아서 보고 있을 정도다. 25일 방송에서 멤버들이 MV의 마지막 신을 찍으며 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장면 자체는 서로 깔깔대며 장난치는 신으로 바다를 향해 신나게 달려가다가 점프를 한다. 그런데 모니터링을 하던 멤버들이 말한다. 왠지 모르게 슬프다고.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MV 마지막 장면이다. 아련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했었다. 이걸 왜 생각씩이나 해야 했냐면 정확히 2009년부터 여름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런데 2010년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여름은 가장 좋아했던 계절에서 가장 힘들고 버겁고 짜증 나는 계절이 돼 버렸다.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나 지금은 그 마음이 짜게 식은 옛 애인처럼.     


<아무튼, 여름>은 거의 직감적으로(?) 구매했다. 청량한 꽃 한 송이와 함께 ‘여름’이라고 쓰인 글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김신회 작가님처럼 내가 얼마나 여름을 좋아했었는지 깨달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아주 어릴 적은 생일이 있어 좋았고, 항상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게 여름은 ‘웰컴 투 파라다이스’라고 외치는 계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름에 부지런히 놀러 다녔다. 강원도의 동굴부터 동해안, 서해안, 휴양림, 부산, 남해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태양 에너지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느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어스름한 저녁에 여름 공기를 마시며 캠퍼스에서 또는 한강, 호수공원, 연트럴 파크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가 좋았다.     


여름 하면 바다지. 양양, 속초, 강릉의 바다와 하늘.


여름을 사랑하는 작가님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여름을 사랑했던 그 시절,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그 여름을 틀어줘, 다시 한번 더 불러줘’.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싹쓰리가 이렇게 찰떡인 노래를 발매하고, 올해는 90년대의 ‘여름다운’ 여름이 찾아왔다. 나만 준비되면 되는 거였다. 저기 앞에서 친구들이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 준비 다 했어! 빨리 안 오고 뭐 해?!”     


그렇지만 뭔가 망설여진다. 즐길 수 있을까? 그때 그 낭만을, 예전에 내가 사랑하던 여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작가님의 말처럼 나는 여름보다 여름의 나 자신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위와 습도와 먹고사니즘에서 비롯된 고뇌로 축 늘어진 내가 아니라, 태양에서 받은 에너지를 마음껏 뽐냈던 언젠가의 내가 보고 싶었다. 린다G 언니가 다시 못 올 추억이라 했다. 다시 못 올 추억을 이렇게 낭비할 순 없다.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 사실을 깨닫는 데 한참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새삼 직감의 위대함을 느낀다. 정말이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사랑했던’ 여름을 내가 ‘사랑하는’ 여름으로 바꿔보려 한다. 초당 옥수수를 맛볼 시기를 놓쳐 아쉽다. 그렇담 샤인 머스캣과 블랑 1664 들고 한강으로 가면 되지. 아 맞다. 그전에 마감부터 하고....




<아무튼, 여름>. 김신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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