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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꽃 Sep 22. 2020

<고쿠센>을 아십니까

그렇게 내게 일본어라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

“너는 왜 일본을 좋아해?”


하굣길, 친구와 함께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다가 대뜸 물었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우는 일본어는 내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고, 역사책에 묘사되는 일본은 극악무도했다. 딱 하나 좋은 건 일제 볼펜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고가의 볼펜 하이텍씨(HI-TEC-C)를 두고 어른들 말투를 따라 “역시 일본이 이런 건 잘 만들어” 정도 말을 뱉는 게 전부였던 내게 그 친구의 취향은 외계 세계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일본 대중가요 J-pop을 들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직사각형 모양의 짙은 남색 숄더백을 책가방으로 가지고 다녔다. 국산 브랜드의 흔하디 흔한 체크무늬 배낭을 메고 다닌 나는 그게 신기하기도 했고 어딘가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는 가끔 파격적인 레이어드룩을 선보였는데, 다른 건 몰라도 왜색(?)의 향기가 풍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는 돌직구를 날리기로 한 것이다.

    

“좋아하면 안 돼?”


돌아온 대답은 평서문이 아니라 의문문이었다.

좋아하면 안 되느냐고? 친구야, 너는 그것을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니? 저놈들이 우리나라에 한 짓을 정녕 잊어버리고 만 거야? 역사책을 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본의 어떤 것이든 좋아해선 안 된다고. 죄책감도 없어? 서대문형무소 안 가봤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어?     


되려 그게 뭐가 문제냐는 친구의 물음에 어이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봇물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거르고 걸러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야, 그래도 찝찝하지 않아? 저들이 한 짓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였다. 우연히도 이 시기는 내가 대중음악, 즉 가요에 눈 뜬 시기와 얼추 비슷하다. 하늘색 풍선을 맹렬히 흔들던 나는 god 사진을 사러 문방구에 갈 때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허옇게 화장을 떡칠한 사람들 사진을 종종 봤었다(그렇다, 그들은 X-Japan이다). 라디오에서 중국어 노래는 틀어줘도 일본어 노래만은 안 되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고, 마침 내 옆에 ‘일류(日流, Japanese Wave)’의 파도를 타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내 질문에 ‘문화’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친일파’가 되는 건 아니라 했다. 그리고 나도 좋아할 거라며 노래 몇 곡을 소개해줬다. 곡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인기 아이돌이었던 타키 & 츠바사(タッキー&翼) 사진을 보여준 건 기억난다. 생애 첫 일본 드라마로 <스트로베리 온 더 쇼트 케이크>를 봤기 때문이다. 큰 재미는 없었지만 꾸역꾸역 보긴 했는데, 상당한 문화충격과 동시에 묘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왜색이 짙다는 건 이런 건가? 근데 뭔가 신선하다.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소재잖아.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2001년 방영된 드라마 <스트로베리 온 더 쇼트 케이크>의 두 주연 배우 후카다 쿄코(좌)와 타키자와 히데아키(우).

그런데 1년 뒤,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소재의 학원물 드라마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본문화에 풍덩 빠지게 된다. 바로 200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드라마, <고쿠센>이다.


2002년 방영된 드라마 <고쿠센>. 이후 한국 케이블 TV에서도 몇 번 방영했었다.


추천은 앞서 말한 친구가 해줬다. 그녀는 친절하게 카페 주소까지 알려주며 연신 강추를 날렸다. 어디 한번 보자, 싶었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다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무지 고교생이라 믿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비주얼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 드라마는 내 혼을 빼놓았다. <고쿠센>을 계기로 친구에게 추천받은 몇 편의 일드를 더 보았고, 쟈니스라는 일본 아이돌 그룹 기획사를 알게 되었으며, 그 기획사 소속 그룹인 킨키키즈(Kinki Kids)에 빠져 하늘색 풍선을 내려놓게 되었다. 닥치는 대로 일본 버라이어티 방송을 보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J-pop을 듣고 가사집을 찾아 따라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어 보아 노래도 빠짐없이 챙겨 들었다). 저작권 개념이 미비한 때라 P2P 사이트에서 앨범을 통으로 다운 받아 CD로 구워 CD플레이어로 듣곤 했었는데, 친구들이 뭐 듣냐고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렸다. 그 친구는 당당하게 ‘문화’와 ‘정치’는 별개라고 말했는데, 나는 어딘가 모르게 죄책감을 느꼈다. 일본문화는 그야말로 학창 시절 나의 길티 플레져인 셈이었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일본어 듣기 환경에 노출시켰고,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너머 이제는 화면 속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는 그렇게 하기 싫고 이걸 왜 배워야 하나 싶었는데, 완전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자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일본어 배우고 싶어. 일본어 학원 좀 보내줘.”     


입시에 치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뭔 일본어 학원이냐는 핀잔이 돌아왔지만, 일본어 공부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아주 거창한 명분을 들어 일본어 학습권을 쟁취해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원어민이 히라가나부터 가르치는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하러 갔다. 처음 영어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렇고, 이때도, 지금도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내게 일본어라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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