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열흘 앞두고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비상이다. 4박 5일간의 제주도 일정을 위해 잡아놓은 숙소는 환불 불가 상품이었고, 렌터카는 예약했을 때보다 30프로 이상 올라 있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비행기표뿐이라 이 여행에 차질이 생기면 눈앞에서 이삼백이 연기처럼 사라질 터였다. 돈도 돈이지만 여행을 기다리며 빵실하게 부푼 아이들의 마음은 어쩐단 말인가. 다행히 우리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 남편을 어머님 댁으로 유배 보내는 것. 남편은 병원에 가서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어머님 댁으로 갔고 어머님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셨다. 일주일간 아이들을 돌보랴 남편 수발 들랴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해냈다. 여행 3일 전 격리 해제된 남편은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왔다.
위기를 겪은 후라 그런지 휴가는 꿀처럼 달았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4박 5일의 여정이 끝나고 돌아온 다섯 식구 얼굴은 달덩이처럼 둥글고 배는 개구리처럼 불러있었다. 코로나 창궐 이후 이렇게나 여유 있게 휴가를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흡족한 마음에 남편에게 그동안 미뤄놓았던 모임을 잡으라 일렀다. 남편은 곧 부부동반 모임을 잡았고 우리는 음악이 꽝꽝 울려 퍼지는 번화가에서 흥겨운 불금을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골프 라운딩을 갔는데 어째 등골이 오싹하고 냉기가 느껴졌다. 땀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채로 에어컨 찬 바람을 쐬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좀 쉬면 낫겠지 했는데 웬걸. 다음날이 되자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필 광복절이라 문 연 병원도 별로 없어 겨우 찾아간 병원 대기자 수는 대기자 수는 40명이 넘었다.
"확진이네요. 증상은 어떠세요. 신고는 저희가 해드립니다. 중간에 증상이 바뀌시면 나오셔서 약 바꿔가시면 됩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확진이었다. 막내가 확진되었을 때도 남편이 확진되었을 때도 제일 가까이 붙어있던 나는 멀쩡했기에 내심 슈퍼 면역자인 줄 착각했나 보다. 어버버 대답 한 번 시원하게 못해보고 도착한 곳은 어머님 댁 현관이었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약을 먹고 기절하듯 잤다. 온몸을 누가 잘근잘근 밟아대는 느낌인데 실체가 없으니 혼자 내 몸뚱이를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다 쓰러지듯 잠이 들기를 수차례. 드디어 이틀 만에 열이 내렸다. 몸살기가 가시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밥다운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백미와 귀리를 달달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를 열었다. 음료와 식료품이 충분했고 지난번 남편 격리할 때 챙겨준 간식도 남아있었다. 어머님 혼자 사시는 집은 깨끗하고 쾌적해서 호캉스를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집에서는 전혀 보지 않던 티브이를 틀고 소파에 앉으니 진정 자유가 느껴졌다. 과자 봉지라도 뜯어볼까 하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첫째가 양성이란다. 이것은 사실상 나의 요양이 끝났다는 통보였다. 남편은 출근해야 했고 아이가 양성이 뜬지라 어머님께 아이들을 봐주십사 할 수도 없었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나는 야심한 틈을 타 귀가했다.
아직 병을 떨치지 못한 채로 살림과 육아가 시작됐다. 다행히 첫 째는 하루 만에 열이 잡히고 크게 아프지 않았다. 아픈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아빠가 얼마나 교육을 시켜놨던지 아이들은 병색이 완연한 엄마를 오히려 돌보려 들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한 뒤 약 먹고 잠드는 게 나의 루틴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파서 그런지 약만 먹으면 기절하듯 잤는데, 몸살기가 가시고 나서도 약을 먹으면 노곤 노곤하게 잠이 쏟아졌다. 어찌나 달게 잠이 오는지 그다음 약 먹을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불면증 환자에게 이리 달콤한 잠은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불면증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우울증이 찾아오면서부터 였으니 2년쯤 됐을까. 처음에는 밤에 잠이 안 와서 낮이고 밤이고 시간이 될 때마다 걸었다. 운동의 효과가 떨어질 즈음에는 맥주를 마시고 취한 채로 잠이 들었다. 맥주를 마셔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는 새벽 두세 시까지 눈을 벌겋게 뜨고 누워만 있었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코를 드르렁 골며 자는 남편에 등을 돌리고 온갖 욕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부족한 잠은 오후에 기절하듯 쓰러져 10여분 자는 잠으로 채웠다. 불면증이 더 심해지자 그 짧은 낮잠도 자지 못했다. 남편은 밤에 못 자면 낮에 자라고 쉽게 얘기했지만 그건 밤낮이 바뀐 거지 불면증이 아니다. 잠을 못 자기 시작하면서 밤이 오는 게 두려웠다. 밤 9시가 넘어가면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몸을 안정시켜준다는 보조제를 입에 털어 넣는다. 쾌적한 잠옷을 입고 방 온습도를 잠들기 유리한 환경으로 맞춰놓기를 신성한 의식처럼 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의식은 멀쩡해진다. 아무리 피곤해도 커피를 여러 잔 마신 것처럼 몸이 각성 상태가 되는데, 심장이 두근거릴 때도 있고 가슴에 핫팩을 얹은 것처럼 열이 치밀어 오르는 때도 있다. 그러면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누워 심장의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양호할 때는 그냥 명상할 때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몇 시간을 누워있는다. 이럴 때는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
불면증을 모를 때는 잠 못 자는 괴로움을 알지 못했다. 아니 잠이 오지 않으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세상에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잠이 안 오면 다할 수 있지 않느냐 말이다. 네 아니올시다. 불면의 악순환에 빠진 몸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일단 머리가 흐리멍덩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무력감이 든다. 뇌파 검사를 하면 하루 종일 세타파가 나오는데 이 세타파는 잠이 들 때 나오는 뇌파로, 깨어있는 시간에 세타파가 나온다는 뜻은 하루 종일 잠자는 것처럼 멍하다는 뜻이다. 낮에 멍하니 지내다 보면, 밤에 잠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떠오르는 새벽 해를 보며 느끼는 것과 같은 패배감이 들었다.
나는 수면제의 은혜도 받지 못했다. 처음에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을 때 어찌나 호되게 악몽을 꾸었던지 다음 날 바로 화장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었다.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불안이 심해져 밖에 나가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씩 운전을 하면서 공황발작이 와서 위험했던 순간도 있다.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이런 꿀잠이라니. 수면제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내 잠을 코로나 증상 완화를 위한 처방약이 해결해주다니! 심지어 낮잠을 두 번씩 자고도 나는 저녁 약을 먹고 두 시간 뒤에 어김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힘들고도 행복한 일주일이었다.
드디어 첫째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둔 화요일. 둘째가 목이 간지럽다고 했다. 기분 좋게 일상을 회복하는가 싶었는데 역시 아니올시다. 둘째가 확진되었다. 하필 지금? 코로나는 끝내 나의 8월을 쉬이 보내줄 생각이 없었나 보다. 가슴에 울컥 화가 솟구쳤다. 출근한 신랑에게 온갖 짜증과 울분이 섞인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폰을 내동댕이쳤다. 띵동 소리와 함께 뜻밖에도 하트가 날아왔다. 옹졸한 마음이 부끄러워 실소가 비어져 나왔다.
복닥대는 아이들에게 엄마 바쁘니 말 걸지 말라 단단히 이르고 청소를 시작했다. 여름 이불을 모아 빨고 베갯잇을 갈고 새 이불도 주문했다. 몇 년 동안 안 입은 옷도 정리해 버리고 애들이 구석에 박아둔 잡동사니들도 뽑아내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혹여나 막내가 읽어줄까 싶어 먼지가 쌓이도록 책장에 방치했던 책들도 정리했다. 마침 퇴근해 눈치껏 청소를 돕던 남편이 내 약봉투를 보며 버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열어보니 약이 2회분 남아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원수 같은 코로나였지만 내게는 아직 아껴놓은 2회분의 약이 있고, 약을 먹지 않고도 3일 동안 밤잠을 잘 잤으니 코로나란 놈이 혹시 미안한 마음에 불면증을 내게서 떼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이렇게 나의 불면증은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