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관악산 정상의 둥근 구조물이 열리면서 마징가제트가 날아오르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아니다. 상상이 아니라 누군가 내게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언젠가 저 둥근 지붕이 열리는 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 무기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 10살 남짓 되었던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림을 그렸던 것도 같다. 돔이 열리면서 비행물체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먹구름이 많이 끼었거나 뭉게구름이 많은 날은 하늘을 쳐다보기 무서웠다. 먹구름이나 뭉게구름이 떨어질 것 같았다. 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며칠씩 지내면서 혼자서 들판에 나갔다가 먹구름과 뭉게구름을 보면 구름이 쏟아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달음박질을 했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머리 위에서 나를 짓누르는 듯한 엄청난 구름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기우란 말을 만들어 낸 중국 기나라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던데, 그 사람들의 심정을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서 우주 천체의 그림을 볼 때도 무서웠다. 까만 하늘에 무수한 별들, 특히 나선형 천체를 보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인체 해부도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몸속의 장기를 설명하는 그림을 보는 것도 무서웠다. 꼭 내 몸속의 장기들이 드러난 듯한 느낌이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으로 칠해진 장기 그림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의 두려움을 주었다.
오늘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하고 혼자서 산책을 하던 중, 남산 꼭대기의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저것도 언젠가 날아가는 건 아닐까? 서울타워가 우주발사체는 아닐까?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엉뚱한 상상을 하며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비상식적인 사고, 엉뚱한 상상력, 자연현상과 사람에 대한 궁금증,... 뭐 이런 나의 성향들이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지천명의 나이에 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데, 어린 시절의 이런 모습들이 내 삶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동심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