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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glish man in New york Nov 28. 2022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고 난 후 단상

자려고 누웠더니 무릎이 쓸려 벗겨져 있었다. 집에서는 목발을 쓸 수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기어서 다닌다. 편하게 누워도 수술부위의 간헐적인 통증과 깁스의 갑갑함에 잠을 이루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도 결국은 잠이 든다.


마지막 서평을 업로드하고 무려 1년하고 반년이 지나갔다. 좋은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느끼는 만족감을 컸다. 그럼에도 회사가 바빠지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서평을 작성하는 것은 잠시 포기해야만 했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고 잠깐 뒤를 돌아보니 그 사이에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나의 삶이 하루하루 무뎌져 간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점도 있다. 우울한 기분은 거의 찾기 어렵다. 퇴근하고 아이들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 캠핑장에서 먹는 간단한 음식과 불멍에도 삶이 꽉 차고 행복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나는 점점 감정적으로 뻔뻔해지고 지적으로 게을러지고 있다. 타인을 더 이상 신경쓰기 않게 되면서 마음은 편안해졌지만 때때로 본인의 실수에도 지나치게 관대해져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개저씨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과 슬픔, 고민과 번뇌가 없으니 뇌는 단순반복적으로 부와 행복만 추구할 뿐 철학적 사고는 멈춰 버린 지 오래되었다. 적고 보니 더 이상 서평을 업로드 하지 않았던 핑계가 되어버렸는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핑계조차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관종이라고 표현하는 일종의 관심 받고자 하는 본능은 사람마다 결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 외모나 금전적인 것 보다는 지적허영이 그 본능을 가장 강하게 자극한다. 대학시절 가방에는 샤르트르의 구토가 들어있었고, 긴 여행을 떠날 때 샤르트르 평전을 들고 다녔지만 정작 나는 그의 책을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이렇게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나의 지식수준의 상당부분은 지적허영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도 그 허영이 채워질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래도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은 이제 더 이상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잘 읽히지 않고 재미없는 책은 아무리 지적허영충족점수가 높아도 과감하게 포기해버린다. 이제 더 이상 샤르트르 책을 읽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이 터무니없는 지적허영은 결국 공감 받고 싶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리고 감정적인 공감보다 사고에 대한 공감에서 더 깊은 쾌감이 느껴진다. 작성한 서평의 하루 조회수가 1만 있더라도 누군가 내 사고를 읽어봤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적으면서 정리해보니 이렇게 삶에 큰 만족감을 주는 서평을 무려 18개월 동안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 아킬레스건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걷기 위해서는 4주의 시간이 더 필요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걷기 위해서는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뜻하지 않게 멈춰선 김에 한 번쯤 돌아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치기 전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에는 항상 애플워치로 시속을 체크했다. 오늘 차로 출근할 때 괜시리 센치하게 창문에 머리를 기대보니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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