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유럽 여행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많다. 쏘리한 나의 영어 실력, 장기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부족한 자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동행할 이가 없다는 것.
한국에서의 나는 ‘혼자’ 생활에 꽤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혼자서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고, 서점을 가는데 거리낌이 없어서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이걸 혼자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졌던 일이 없었다. 한데 여행을 결정한 순간 생경한 내 모습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해외에서 혼자는 좀 그렇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많이 헤멜텐데, 위험하진 않을까?
나의 물음에 여행 선배들은 '유랑'에 대해 말해줬다. 유랑은 유럽 여행의 정보가 가득 담겨있는 네이버 카페로, 여행지에서 동행을 구하기도 하는 커뮤니티다. 평소엔 혼자 다니다가 문득 누군가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을 때 글을 올리면? 성사되는 식이다.
ⓒ오전
‘같이’가 그리울 때만 만나는 사이. 꽤나 낭만적인 방법이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꼭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거부감이 컸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커서인지 '그럴 바엔 혼자가 낫지!'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학연수가 나에게 좋은 선택지였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동행 만들기’. 학생 비자로 3개월간(최대 1년 가능) 유럽에 머물 수 있게 됐는데, 어학원은 두 달만 등록했다. 한 달은 여행을 위해 일정을 비워뒀다. 어학원에 다니는 동안 함께 여행을 떠날 사람을 물색해 볼 셈이었다. 만약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래도 외국인과 어느 정도 대화를 해봤을 테니 그땐 혼자라도 덜 두렵겠지!라고 편하게 여겼다. 마음 한편에는 약간의 초조함이 깔려있었지만.
출국 전 초조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몰타에 상경하기 전부터 좋은 친구 H를 만났다. 같은 에이전트를 이용하고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는 친구가 있었고, 경유지인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함께 몰타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게 됐다. 나와 같이 퇴사를 결정하고 몰타로 온 친구였고 여행을 함께 갈 친구가 없어서 어학연수를 선택한 상황도 비슷했다.
에이전트에서 주최한 저녁식사에서도 인연을 만나게 됐다. 함께 입국한 친구는 안타깝게 다른 어학원이었고, 식사 자리에서 같은 어학원에 같이 첫 등교를 할 친구 Y를 만났다. 그리고 등교 첫날, 함께 마트를 가보기로 한 Y가 N을 소개해줬다. 오, 2일 만에 무려 친구를 3명이나 사귀다니 꽤 운이 좋았다. 일주일 뒤엔 같은 반에 한국인 친구 J가 새로 왔고, 심지어 J는 나와 같은 숙소였다!
ⓒ오전
동행에 대한 의무감으로 억지 인연을 만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걱정은 사서 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오랜 시간 새로운 이와 친해져 본 적이 없어 삐걱거릴 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웠다. 다들 큰맘 먹고 한국을 떠나와 몰타에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고 그런 점이 나와도 잘 맞았다. 그리고 이 4명의 친구들이 나의 3개월을 가득 채워줬다.
친구를 사귈 시기는 다 지났다고 생각했다. 찐하게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만 봐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들 뿐이다. 회사 동료들 역시 20대 초중반에 만났던 이들만 간간히 연락하고 지낸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 지가 언젠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네트워크가 넓혀질 일은 전혀 없으려니 했다.
새로운 인연은 소모적이라고 선을 그어왔던 나에게 해외여행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다. 내 인생에 귀여운 손님들을 초대해줬고, 오랫동안 고여있고 편협했던 식견을 넓혀줬다.
이들과 함께라 ‘혼자’ 여행도 외롭지가 않았다. 함께하지 못해도 같은 시간대에서 짹짹거리는 친구들이 있어 보다 풍성했던 여행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사히 여행을 끝마친 지금, 행복했던 기억을 함께 뜯어먹는 것도 여행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