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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ana Jan 30. 2023

이거 인종차별 아님?

여행하다 만나는 무례함

몰타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주 쓰는 유행어가 있었다. 바로 ‘이거 인종차별 아님?’. 하하. 슬프게도 유럽에 있는 동안 꽤나 자주 인종차별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전

미디어에서 인종차별을 접했을 땐 위협적이고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다. 폭력성을 띄고 있는 행위니 당한다면 바로 알 줄 알았다. 실제 마주한 인종차별은 조금 달랐다. 아주 일상적이고 교묘해 “이게 인종차별이 맞나?”라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처음 겪었던 인종차별은 ‘곤니찌와’였다. 보통 누군가의 국적이 궁금하다면 어디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출신을 지레짐작해 인사를 건넨다? 흠.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사실 그럴 수 없음). 근데 인사를 건넨 뒤에 낄낄거린다면? 내 출신을 밝혔음에도 개의치 않는다면? 100% 인종차별 맞다. 아시아인들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곤니찌와, 아리가또, 니하오는 귀여운 수준이다. 한 번은 친구 H와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코로나!’라고 외치고 갔다. 처음엔 누가 이렇게 마트에서 소리를 지르나 싶어서 돌아보기만 했는데, 마트엔 동양인이 우리 밖에 없었고 이미 그 사람은 도망간 후였다. 인종차별인 걸 뒤늦게 깨달은 케이스다.

오전

또 하나는 ‘헬로우 뷰티’. 몰타에서 지낸 기간은 3개월. 한 달은 여행을 갔다 쳐도 2달은 꽉 채워 몰타에서 살았다. 겪어본 바로는 정말 안전한 나라다. 한국처럼 가로등이 많지 않아 저녁에 확 어두워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밤늦게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라 무서웠던 기억은 없다. 다만, 성희롱에 가까운 인종차별은 좀 있다.


처음 몰타에 갔을 땐 아침마다 해변에서 러닝을 할 테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계획을 세웠었다. 나는 8월 말에서 11월 말까지 머물렀는데 날씨가 선선할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원대한 내 계획은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꽤 덥더라고.


뜨거운 태양만큼 들러붙는 시선과 말들도 문제였다. 아침에 러닝을 나갈 때면 많은 이들을 마주친다. 과일을 내놓으며 장사를 준비하는 식료품점 아저씨. 작은 슈퍼마켓 앞에서 간이 의자를 펼치고 앉아 지나가는 행인을 구경하는 사장님.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주머니. 한데 슈퍼마켓 사장님이 참… 그렇더라.


처음엔 이어폰을 끼고 있어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지 몰라 멈춰 섰는데, 다시 한번 ‘헬로우 뷰티’라면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라고. 이어폰을 빼고 왓디쥬세이?라고 말하자 실실 웃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라. 싫은 티를 내니 이후에 말은 걸지 않았지만 표정이나 눈빛은 여전했다.


한 번은 손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악수를 하자는 식으로 나에게 손을 뻗었는데 아무래도 다양한 인종차별을 체험한 뒤라 멈칫했다. 그러자 아이러브 아시안걸이라고 노골적인 성희롱을 했다. 성희롱은 한국에서도 당해보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워서 한국 욕이 절로 나오더라. 씨부터 시작해 온갖 욕을 뱉어내자 그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갔다.

오전

이런 일이 많다 보니 한국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자주 인종차별로 흘러갔다. 우리는 하루 일정을 끝마치고 해변에서 종종 맥주를 마셨는데 오늘은 어떤 인종차별을 당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수업시간에 묘하게 한국을 무시하는 인간들에 대한 험담도 하고. 그렇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비둘기가 갑작스럽게 우리 쪽으로 날아들자 “이것도 인종차별 아님?”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고, 이후 우리들 사이에서 밈이 됐다. 재수 없는 상황에 인종차별 당했다며 웃어넘기는 거다.


친구들과 있을 땐 재미로 넘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스트레스였다. 잦은 인종차별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는데 예민해진 거다. 한국에서는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건네면 보통은 신천지 혹은 카드영업이다. 목적이 있는 거지. 그래서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참 스몰톡을 좋아한다. 길을 가다가도 나이스 셔츠라면서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커피숍 아르바이트생들도 근처 어학원을 다니냐며 자기가 누구 선생님과 안다며 너스레를 떤다.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말들을 100%로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인 거다.

오전

한 번은 지레 겁먹다가 재밌는 대화를 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 한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또 인종차별인가 싶어 함께 있던 H에게 눈치를 줬고, 우린 빠르게 그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때 아저씨가 나에게 “세울?”이라고 물었다. 나는 뭔 말인가 싶어서 갸우뚱하다 외국인 친구들도 서울을 ‘세울’이라 발음하는 것을 떠올렸고, 예스 아임 프롬 세울이라고 답했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서울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인이었고, 한국에서 먹은 막걸리와 김밥이 맛있었다며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저 한국을 추억하는 1인이었을 뿐인데, 차갑게 대할 뻔 한 거지.

오전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같은 칸의 어떤 여자 아이가 친구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아이는 10~11살쯤 돼 보였는데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동양인을 처음 봐서 신기한가? 싶었다. 한 번 쳐다보면 말 줄 알았는데 목적지를 향하는 동안 시선은 계속됐고 우리 앞자리에 자리가 나자, 아예 자리를 옮겨 정면에서 우릴 쳐다보더라.


친구와 나는 “좀 심한 거 아니야?”, “왜 쳐다보는지 물어봐야 하나?”라면서 당황했고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해 빠르게 지하철에서 내렸다. 하지만 목적지가 같았는지 같은 역에서 하차했고, 우린 빠르게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엄마가 익스큐즈미라며 말을 걸었고 우리에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한국을 너무 좋아해 우리가 한국인으로 보여 신기해서 쳐다봤단다. 또 서울에 가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이 얘기를 아이가 못한 이유는 울먹이고 있어서였다. 너무 좋아서! 아마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을 사랑하는 팬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보고 사진을 찍어줄 수 없냐고 물었고 어색하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우리 폰으로도 찍어둘걸…


이렇듯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모든 말에 날을 세우기엔 그리 차갑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인종차별은 단어 그대로 ‘인종’을 가지고 차별을 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기에 우리가 막을 순 없다. 일상에서도 그렇듯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것. 우리에게 호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동양인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사고처럼 예상치 못하게 당할 때가 많아 타격감이 크지만, 늘 긴장 상태로만 있기에는 여행은 짧다.

오전

필자도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시도 해보고 싸워도 봤는데 둘 다 속 시원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이 건네는 맹목적 비난 혹은 적개심을 마음에 담아둬 여행을 망치지 말길. 한없이 가벼운 그들처럼 우리도 가볍게 넘겨주자. 말처럼 쉽진 않지만 우리의 여행은 짧고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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