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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ana Feb 01. 2023

카메라를 닦기 전과 후

천진했던 나를 만나게 하는 여행의 힘

ⓒ오전

사진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20대 때 나와 비교한다면 음… 카메라와 멀어진 건 사실인 듯하다. 싸이월드, 페이스북에 빠져있던 시절에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을 고치고, 색감까지 수정했으니 정성이 대단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진을 찍고 올리는 행위가 참 귀찮고 수고스럽더라.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모든 일에 흥미가 떨어졌으니, 아마 사진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 나를 향하던 카메라와는 마주할 일이 없어졌다. 일기처럼 남기던 풍경 사진도 마찬가지. 이젠 필요한 서류를 찍어둬야 할 때 먼지 쌓인 카메라를 벅벅 닦아내야 했을 정도다.


여행은 오래된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나에게 사진이 그랬다. 큰돈 주고 여행을 나와서일까, 아니면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나이가 돼서일까. 카메라를 다시 들게 했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밤이라서, 그냥 걷다가 문득.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자주 남기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가던 인스타그램도 제 역할을 했다. 도장 찍듯 매일 남기는 인스타 스토리에 친구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너 인스타 하고 있었구나?”

처음 갔던 파리에서 간절함 없이 찍은 에펠탑 사진이 왼쪽, 오른쪽은 보다 심혈을 기울여 찍었다 ⓒ오전

우스운 게 좋아하던 일도 자주 하지 않다 보면 방법을 까먹게 되더라. 선명한 사진을 위해서는 촬영 전 카메라 렌즈를 닦아야 한다. 그리고 찍은 사진은 다시 확인해야 한다. 흔들렸거나 생각보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각도로 찍어봐야 하니까. 몇 년 만에 사진을 잘 찍어보려니 잘 될 턱이 있나. 몰타 생활 초반에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 카메라에 묻은 지문에 빛이 번지고, 카메라가 흔들려 초점이 다 나간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여행 초반 문제점을 알아냈고 이제 사진에 간절함을 담기로 했다. 언제 또 해외에 나올지 모르고, 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할 엄마와 언니에게도 괜찮은 사진을 보내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낡아진 나의 사진 실력은 크게 늘진 않았지만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오전

(나의 몰타 친구들 N, Y, J, H 덕도 컸다. 20대인 친구들은 사진을 찍는데 아주 익숙하더라. 매번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뒤로 돌아있으니 “언니 웃어!”, “얼굴 가리지 마!”, “앞모습 찍자”라면서 조언을 해줬고, 갑자기 카메라를 가져다대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줬다. 나의 여행 사진을 다 이 친구들이 찍어줬으니 압도적으로 감사하다.)


여전히 예전의 나처럼 카메라를 자주 들진 않는다. 다만 이전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그저 스쳐 지나가진 않는다.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감상하고 사진을 남기게 된다. 여행이 알려준 순간의 소중함 덕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이 주는 따스함도 한몫한다. 찍어둔 사진을 보면 여행의 기억이 더 선명해지더라. 이땐 날씨가 이랬지, 기분은 이랬지, 이래서 참 좋았지처럼 말이다. 이렇듯 사진 한 장에는 은근히 많은 것이 담겨있다.

ⓒ오전

나에게 여행은 카메라를 닦기 전과 후와 같다. 선명하지 않고 복잡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고, 빛 번짐처럼 삐죽삐죽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염세적인 말도 덜하게 했다. 걱정 없이 방긋방긋 웃었던 오래전 나와 다시 만났던 기분이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확실히 그랬다.


현실 속 나는 다시 먼지가 쌓이고 지문 자국이 남겨지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천진함은 잠시 접어두게 되더라. 코 앞에 닥친 걱정을 떨쳐내느라 바빠 그때처럼 자주 감동하고 환호하진 않는다. 그럼, 현실을 살아야지. 여행을 꿈꾸되 현실을 살아야지. 다만 다시 만난 오래된 내가 녹슬지 않게, 카메라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자주 닦아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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