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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킴 Dec 27. 2023

다케오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어제는 다케오의 약 두 달간의 여정을 전시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진도 찍고 조금 더 추억하기 위해 일부 관람객들에겐 작은 드로잉들도 선물했다.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진 않아도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창작활동은 이런 맛에 하는 것일까? 보이는 것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녹였다는 것에 기쁘고  상대방도 작업물을 통해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 비단 예술작품에 제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늘은 오전 9시에 일어나 이불속에서 조금 느리게 일어나 작업실로 향했다. 숙소를 공유하는 칼이 자동차를 렌털했기에 그의 차량을 얻어 타 이레나와 에릭과 함께 작업실에 들러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퍼포먼스나 도자와 같은 물건이었기에 쉽게 정리하고 먼저 떠났다. 


'Love you all'


'all the best.'


이레나는 떠나며 말했고 하루 더 다케오에 머물러야 하는 칼과 에릭 그리고 나는 12월 여정의 마무리를 따뜻한 포옹으로 마무리했다.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 탓에 내향적이라 쉽게 다가가지 못한 내게 칼과 이레나는 매번 식사에 초대하며 하루를 물어봐주고 함께 다케오에 위치한 히류가마에서 각자의 오브제를 만드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너 시간의 도자 만드는 시간이 끝나면 약 삼십 분가량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우리는 항상 작업실 근처의 라멘가게에 들러 하루를 마무리하고 이후엔 온천을 갔다.

내일이라도 금방 만날 것 같은 룸메이트들이었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레나는 오늘 짧은 여행으로 부산을 방문한다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서로는 알겠지 오늘이 마지막이다. 








짐을 모두 챙긴 칼은 먼저 에릭과 여행한다며 차를 타고 떠났다. 작업실에 남은 나는 벽에 마저 정리 못한 캔버스 조각들을 모아 돌돌 말아 정리했다. 벽에 펼쳐 보일 땐 꽤나 많아 보였는데 정리해 모아보니 내 생각보다 적었다. 






캔버스들을 한국에서 가지고 온 화구통에 넣었다. '이건 내 무게다' 하고 생각하고 물감들을 자전거 바구니에 정리해 넣고 어깨엔 화구통을 둘러멘 뒤 페달을 밟아 집으로 향했다. 

익숙해져 가는 풍경들을 뒤로하고 이제 며칠뒤면 나도 집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집에 와 짐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으니 멍해진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온 날이 떠올랐다. 새벽녘에 추워 잠이 깼고 일주일정도는 잠이 설치며 들었다. 집에 갈 땐 지도를 켜서 가야 했고 밥을 먹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 한숨도 나왔다. 이제 다시 한국에 가려니 밤길에 쏟아질듯한 별을 보며 간 시간들이 벌써 그립다. 오늘도 내일도 한국에 가서도 하늘은 계속 볼 텐데 같은 하늘일 텐데 뭐가 아쉽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걸어가며 우주를 바라본 많은 시간들은 참으로 낭만적인 순간들이었다. 이래저래 한참을 별 생각을 하다 이제는 오갈 데 없는 신세에 배가 고파져 디어존에 왔다.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곳을 11월 말쯤에 알게 되어 매주 방문하며 카레와 코코아를 마시고 간다. 

올 때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뷰를 즐기는데 어쩐지 지겹지가 않다.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안정적인 분위기의 식당. 

메뉴판에 아직 못 먹어본 요리가 한가득이고 아직 다 들어보지 못한 비틀스의 노래는 여전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여유롭다.


실시간..

내가 좋아하는 디어존의 코코아.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떠나는 순간엔 항상 아쉬움이 가득한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오겠단 기약을 마음에 품고 지내야지. 인생에 이렇게 이방인으로 살아본다는 일이 잦다는 건 축복일까?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자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와서 사는데 정작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에 대해,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재정의하는 행위가 인생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이번 다케오 레지던시 살이는 참으로 좋았다. 

내 인생은 내가 한 선택으로 완성되어 가는 중인데 꽤나 마음에 든다. 삶에는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운명 같은 장치들도 분명 크게 작용하겠지만 어찌 되었던 내가 행복하고자 하는 만큼 행복하고 희망을 갖고자 하는 만큼 삶에 희망이 가득 차기에 내년엔 더 많은 사랑이 삶에 가득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한 겹 한 겹 살다 그림도 그리고 사유하다 보면 뒤돌아 보았을 때 내 삶의 태도가 근사한 삶을 만들어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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