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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을 준비하며

꽃, 말, 자기

by 모모킴

2025년은 까마득하게 느껴졌는데 정신 차려보니 2025년의 2월 한가운데 서 있다.

그간 크고 작은 전시들을 준비하며 작업을 했는데 전시가 대게 그러하듯이 갤러리의 취향이 들어가는 편이라

내가 좋아하는 작업들이 전부 조명받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촌화랑의 연이 닿아 내가 가진 다양한 포트폴리오 중에서 좋아하는 꽃과 문장들 그리고 도자기가 들어간 작업을 주목해 구성하자는 전시 제안이 와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도자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건 2023년 일본 다케오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평소 입체적 조형물에 대해 관심이 있던 터였고 근처 도공들이 많이 있는 아리타에 도자기 보러 종종 방문했기에 다케오에서 보낸 작가 생활은 70% 페인팅 작업을 했고 30%는 히류가마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푹 빠졌었다. 그 뒤로 한국에 오고 나서도 서울 곳곳에 도자기 만드는 클래스를 방문해 배우다 결국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이천의 한 공방에 정착해 현재까지도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일상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내게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작업의 세계관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새롭게 배우게 된 도자기 일은 자연스레 작업 세계에도 등장해 내가 시대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전에는 그저 페인팅에 가상의 도자기를 상상해 그렸다면 이젠 현존하는 도자기를 모티브로 그려내기도 하고 만들어진 도자기는 일상 속 예술 가치가 부여되어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완벽한 형태의 도자기들은 닮고 싶은 이상적인 삶과 닮아 좋고 울퉁불퉁한 모난 도자기들은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과 닿아 있어 좋다. 잘 구워져 무엇이든 담을 수만 있다면야 이미 제 몫은 다 한 셈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둘러쌓는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하고 애정하는 시선을 곳곳에 닿아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개인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고 사랑과 삶의 의미를 가까이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술과 공예의 통합이며, 이로써 삶의 모든 모습을 예술로 채울 것입니다. ' 요제프 호프만'


텍스트들은 오래전부터 수집된 것들을 이미지와 재조합하여 만든다. 좋아하는 글귀나 인상 깊은 책의 제목, 나의 철학과 마음을 대신 전할 문장들을 사용한다. 보통 일상과 삶의 안녕 그리고 삶에 관한 글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서 인식할 것인가. 또는 존재로서 인식할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 문제일 뿐이다. 그 구멍이 도넛의 맛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지난 투병으로 잃어봤었던 일상은 도넛의 구멍이었을까? 부재를 인식하고 나서야 평범한 일상 존재를 증명했고 그 가치가 드러났다. 수집된 글귀들은 삶을 계속해서 나아가게 해주는 동력이 된다.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이 온오프라인 시대에 우연히 마주한 문장들이 내게 힘을 줄 때면 그것들을 되뇌며 수집해 글들을 가까이했다. 무심코 접하는 말들의 철학과 의미가 닿지 않는 일상의 영역이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내 작품 속 등장하는 문구들이 대게 힘과 기쁨이 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는 이유이다. 어떤 이들은 몇 단어들의 조합으로 삶을 구원받는 느낌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번 꽃, 말, 자기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나의 세계관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철학'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Home Sweet Home' 연작이 일상 그대로를 기록한 작업한 거라면, 이번 전시에서는 실존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것들의 조합으로 보다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 변이 된 DNA의 튤립들은 각자의 생존방식을 통해 자라나 하나의 정원 이루어 가고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들은 삶을 예술로 채우고자 하는 철학을, 작품 곳곳에 보이는 문장들은 보는 이에게 삶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의 확장된 세계관과 철학들 들여다봐주길 바란다.




여의도 이촌화랑

모모킴 개인전 <꽃, 말, 자기> 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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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이촌화랑

모모킴 개인전 <꽃, 말, 자기>

2025년 2월 21일 (금) 부터 3월 23일( 일) 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76 나라키움빌딩 109호

주차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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