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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9월 일기

by 모모킴




삶을 살다 보면 수많은 계획과 넘실대는 기대의 홍수 속에 살아가게 된다. 나 또한 작가로서 지향하는 목표점과 개인으로서의 삶의 목표점이 같지 않고 예술이 삶이 되기보단 삶이 예술이 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하루하루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평생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어떤 콜렉터가 작가로서 목표와 지향점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나는 괜스레 이것저것 늘어놓게 되었다. 응당 작가로서 막연한 꿈들 같은 비엔날레나 미술관 같은 것들 그리고 생각하게 된 나의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것들. 삶이라는 건 언제나 이상과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작가라면 실패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가? 비엔날레에 들이밀지 못하는 작업은 싸구려 소비되는 미술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하는.


대학원을 괜히 간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은 때로 이상에 대한 생각만 많아지게 하고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에 자책감만 틈새로 쌓인다. 세상이 너무 넓고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만리장성이다. 나는 언제 바젤에 진출하고 아모리쇼에서 다른 작가들과 견준다는 건지 무한하지도 않은 시간이 한 달음에 달려와 이제 게임 오버라고 재촉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자주 조급해진다. 작업실엔 보여주지도 못한 작업들이 조금씩 쌓여간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지우지도 못하는 그림들 같은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은 꾸준히 해야 한다.


꿈이 많은 탓에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포함해 설치도 공예도 조각도 모두 잘해보고 싶지만 어쩌면 모든 것은 과정과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일 거라 생각한다. 꾸준히 하다 보면 되겠지. 그러나 꽤나 많은 마주하는 업계 사람들은 마치 내 1년을 10년 대하듯이 이 시기엔 이 것을, 그다음엔 저것을 해야 한다며 제시한다. 이상하다 내가 선망하는 작가들의 회고전을 가서 전시를 보거나 그에 대한 책을 보다 보면 그들의 1년은 잠시 한숨 멈추어 가기도 3년이고 5년이고 멀찍이 고향을 떠나 여행을 하고 여유자적하던 시간도 있던데 동시대 작가들의 시계는 전과 달라서 일 년을 오 년처럼 척척 써버릇하고 대단히 포켓몬처럼 매년 진화를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들도 기술직이라 기술발전이 급진적으로 빨라짐에 따라 발전 시계를 빨리빨리 돌려야 하는 숙명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 쉰에 작업을 시작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사실 어쩌면 비엔날레고 바젤이고 보여주기 그럴듯한 목표치를 남들에게 지기 싫어 으스댄 것 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냥 평생 작업을 하는 게 꿈이거든. 내면을 곱씹다 보면 화려한 트로피보단 켜켜묵은 흔적이 낫겠다 싶다.


어떤 이들은 작업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서 네 튤립이 어쩌라고?' '그저 예뻐보이는 인형을 나열한'. 대학을 열심히 다니던 십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작가가 된 모습을 상상했을 때 이런 작업물을 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대단히 사회의 이야기와 담론을 펼치는 주제거리를 가지고 멋들어진 작업을 할 줄 알았지. 그러나 작업자에게 있어서 주제란 당연히 자신 깊숙이 느껴지고 성에 부대끼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기에 나의 작업은 어느새 내 생존 기록과 관련된 집에 관한 이야기들과 예뻐 보이는 꽃 속의 작은 변이 된 진화에 관한 이야기(사실 뭐 그다지 변이 되어 보이지도 않지만) 투병을 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나의 상황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가 어찌나 강화되던지 모든 것을 숨기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철갑 그 자체다. 그러니 왜 집을 그려야 했고 왜 디지털 작업이 당시에 주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변이 된 꽃들은 마냥 해맑기만 한지는 나만 알고 있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무기 삼아 고급 포장지에 비싸게 팔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햇빛을 내리쬐기만 한다. 가장 맑은 날에는 발아래 그림자가 가장 짙은 법이라고. 내년이면 드디어 일부 끝나게 되는 중증환자 타이틀의 5년간의 긴 상황들을 나는 언제쯤 내 칼을 삼아 신명 나게 칼 춤을 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이러한 것들을 나는 칼로 만들 수 있기는 한 걸까?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여기저기서 내게 붙어질 타이틀이라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 같다. (그래도 나의 작가노트를 찾아 여기까지 와 글을 읽는 거라면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조심히 계속해서 써본다.) 누군가 내게 병마와 싸워 이겼다는데 나는 싸워 이긴 적 없이 살려달라고 빈 찌질한 기억밖에 나질 않고 당시에 함께 투병한 친구들 모두 하늘나라로 간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를 배경에 두고 해당 집단을 대변하다 버릇하면 누군가 내게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살아남은 영웅시될까 봐 무섭기도 하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답이다. 감사히 살아있는 게 어디야 하여간 요새 사람들은 삶이 무한한 것처럼 사는 것 같다. 살아있는 게 희망인지도 모르고 바보들.. 순간순간 작은 행복이 중요하다 이 말이다 왜냐면 나중은 없거든. 당장 좋아하는 노래를 더 많이 듣고 사랑하는 것들을 함께 해야 한다.


난 내 숨들을 보여줄 솔직할 용기도 없고 그럴듯한 알량한 주제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나는 종종 만나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에게서 돌을 맞고 죽었던 순간들이 있기에. 안 팔리면 어쩔 수 없지 애초에 훨훨 팔리려 시작한 작가 생활이 아니기에 하고 싶은 작업을 하자는 정신승리가 주를 이룬다. 뭐 어떠한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까놓고 보면 몇몇은 다 죽고 나서 재조명되기도 했더라. 현재 전시 기회로 아주 작은 작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11월에 잠시 떠나는 레지던시에선 작품 제작도 중요하지만 작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많이 쓰고 하고자 하는 다음 작업에 대한 스케치와 공부를 많이 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냥 이래저래 최근 들은 이야기들과 오랜만에 마주한 고요한 시간에서 생각이 많아져 글을 썼다. 다음에 또 언제 글을 쓰게 될지 모르지만 글은 자주 쓰다 버릇해야겠다. 요트를 타야만 꼭 행복한가? 나는 그저 해변에 모래사장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기만 해도 좋은걸. 아무튼 오늘의 일기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지만... 있어보이는 척 하지 말자.....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잘 집중해서 하루를 예쁘게 마무리 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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