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들과 한잔 했습니다. 동인천 삼치구이집에서 고등어구이 먹었습니다. 저의 첫 책을 읽은 어느 한 친구가 콕 집어 장소를 정하고 비상연락망을 가동했다지요. 부모님상이나 장인장모님상을 접할 때에나 겨우겨우 뜨문뜨문 얼굴 보던 친구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동갑내기는 두 명뿐. 대부분이 한 두살 어린 동생들입니다. 그래봐야 다들 낼 모래 환갑과 은퇴를 앞둔 늘그막의 아저씨들입니다.
그냥 아저씨들은 아닙니다.
저와 오십 년이 넘게 정을 나누고 연을 이어 온 동네 꼬마 녀석들입니다. 일명 ○○친구들입니다. 그래도 이제 서로 나이 먹어가니 그냥 편하게 친구 하자고 해도 형님 형님 거리면서 깍듯이 예를 갖춥니다. 마계인천의 법도가 원래 이렇습니다.
곧 돌아올 내 생일에 자기들이 인천 <혜진부페>에서 민요가수 불러 환갑잔치 해 주겠다며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음 곁들입니다. 큰 식당이나 근사한 장소가 없던 그 옛날 인천의 아들딸들은 부모님 환갑잔치를 거의 혜진뷔페에서 열었거든요. 친구들이 내 환갑잔치를 거기서 열어 주겠다는 건 한바탕 농담이지만, <혜진부페>는 여전히 꼿꼿하게 운영하고 있기를 슬쩍 바래봅니다.
하여튼 못 말리는 녀석들.
송림동 동부 시장통 깡마당에서 다 낡아빠진 공 차고, 툭하면 반으로 쪼개지던 작은 공으로 찜뽕하고, 분필로 그은 오징어 게임하며 연 날리던 코흘리개 녀석들, 창비와 오적을 돌려보며 시대를 제법 논하던 반짝이던 녀석들이 어느새 의젓하니 큰 기업체 임원이 되어 있고 사장님이 되어 있고 고위직 공무원이 되어 있습니다. 폭주기사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 위풍당당 전업 남편, 강남에서 유명한 냉면집 사장님, 김포 땅부자도 있습니다. 스펙트럼 다양하니 다 합해서 열한 명입니다. 당연스레 이 모임의 명칭은 일명 <마당 일레븐>입니다. <쎄븐 일레븐>아닙니다.
그 옛날옛적 스무 살 무렵에 정식 모임을 시작했고, 초대 회장은 마땅히 문학소년 입지요.
(그때는 INFJ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높은 자리에 있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오늘 이 자리에서 무게 잡거나 과시하진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정겨운 단어들이 쏟아지고, 책을 읽은 소회와 감상들을 펼칩니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갑옷들을 훌훌 벗습니다. 지난한 세상살이 하느라 남모르게 입어 온 완전 군장. 그것은 우리 사이에 필요 없는 겉 옷일 뿐. 누군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풀어 헤치는 무장해제는 무언의 약속입니다. 친구라면 그런 게 있다지요. 척하면 착입니다. 눈빛이 말해 줍니다. 우리는 그 옛날 순수와 낭만의 시대를 같이 기억하거든요.
그러니,
우리 모두는 소년 소녀입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세월의 주름만 깊을 뿐. 해맑던 눈동자, 아름답던 미소는 어디 가지 않고 바로바로 보입니다. 쓰는 자 눈에는 다 보이고 속일 수 없다지요. 쓰는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지요.
소년의 소중한 친구들과 인천 자유공원 올라가는 허리춤, 삼치골목에서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상상입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봅니다. 아주 오랜만에 부려보는 진상이겠죠. 아니면 이제 흘러간 낭만의 한 페이지 이려나요 (이 또한 상상입니다. 이 문장은 취중에 쓴 문장입니다). 요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목놓아 노래 부르면 철컹철컹 이라지요. 상상 속에서 불러도 잡아가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