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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Jul 21. 2024

반갑다 친구야


주말에 친구들과 한잔 했습니다. 동인천 삼치구이집에서 고등어구이 먹었습니다. 저의 첫 책을 읽은 어느 한 친구가 콕 집어 장소를 정하고 비상연락망을 가동했다지요. 부모님상이나 장인장모님상을 접할 때에나 겨우겨우 뜨문뜨문 얼굴 보던 친구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동갑내기는 두 명뿐. 대부분이 한 두살 어린 동생들입니다. 그래봐야 다들 낼 모래 환갑과 은퇴를 앞둔 늘그막의 아저씨들입니다.


그냥 아저씨들은 아닙니다.

저와 오십 년이 넘게 정을 나누고 연을 이어 온 동네 꼬마 녀석들입니다. 일명 ○○친구들입니다. 그래도 이제 서로 나이 먹어가니 그냥 편하게 친구 하자고 해도 형님 형님 거리면서 깍듯이 예를 갖춥니다. 마계인천의 법도가 원래 이렇습니다.


곧 돌아올 내 생일에 자기들이 인천 <혜진부페>에서 민요가수 불러 환갑잔치 해 주겠다며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음 곁들입니다. 큰 식당이나 근사한 장소가 없던 그 옛날 인천의 아들딸들은 부모님 환갑잔치를 거의 혜진뷔페에서 열었거든요. 친구들이 내 환갑잔치를 거기서 열어 주겠다는 건 한바탕 농담이지만, <혜진부페>는 여전히 꼿꼿하게 운영하고 있기를 슬쩍 바래봅니다.


하여튼 못 말리는 녀석들.

송림동 동부 시장통 깡마당에서 다 낡아빠진 공 차고, 툭하면  반으로 쪼개지던 작은 공으로 찜뽕하고, 분필로 그은 오징어 게임하며 연 날리던 코흘리개 녀석들, 창비와 오적을 돌려보며 시대를 제법 논하던 반짝이던 녀석들이 어느새 의젓하니 큰 기업체 임원이 되어 있고 사장님이 되어 있고 고위직 공무원이 되어 있습니다. 폭주기사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 위풍당당 전업 남편, 강남에서 유명한 냉면집 사장님, 김포 땅부자도 있습니다. 스펙트럼 다양하니 다 합해서 열한 명입니다. 당연스레 이 모임의 명칭은 일명 <마당 일레븐>입니다. <쎄븐 일레븐>아닙니다.

그 옛날옛적 스무 살 무렵에 정식 모임을 시작했고, 초대 회장은 마땅히 문학소년 입지요.

(그때는 INFJ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높은 자리에 있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오늘 이 자리에서 무게 잡거나 과시하진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정겨운 단어들이 쏟아지고, 책을 읽은 소회와 감상들을 펼칩니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갑옷들을 훌훌 벗습니다. 지난한 세상살이 하느라 남모르게 입어 온 완전 군장. 그것은 우리 사이에 필요 없는 겉 옷일 뿐.  누군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풀어 헤치는 무장해제는 무언의 약속입니다. 친구라면 그런 게 있다지요. 척하면 착입니다. 눈빛이 말해 줍니다. 우리는 그 옛날 순수와 낭만의 시대를 같이 기억하거든요.


그러니,

우리 모두는 소년 소녀입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세월의 주름만 깊을  뿐.  해맑던 눈동자, 아름답던 미소는 어디 가지 않고 바로바로 보입니다. 쓰는 자 눈에는 다 보이고 속일 수 없다지요. 쓰는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지요.


소년의 소중한 친구들과 인천 자유공원 올라가는 허리춤,  삼치골목에서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상상입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봅니다. 아주 오랜만에 부려보는 진상이겠죠. 아니면 이제 흘러간 낭만의 한 페이지 이려나요 (이 또한 상상입니다. 이 문장은 취중에 쓴 문장입니다). 요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목놓아 노래 부르면 철컹철컹 이라지요. 상상 속에서 불러도 잡아가려나요?


동해 푸른 바다에서 뛰노느라

등마저 푸르러진 고등어를 마주합니다.

곁들인 아침이슬은 동해가 됩니다

서해를 바라보며, 친구들과 동해를 마십니다.


황혼이 찾아온다 해도 쓰린 비가 쏟아진다 한들

멋질 듯합니다.


책은 이렇게 다시 친구가 됩니다.

수 십 년 만에.

이를 어쩌죠. 말없던 소년이 수다쟁이가 됩니다.

친구들  앞에서.  

반가운가 봅니다. 역사를 함께 써온 녀석들과 척척 악수합니다.

반갑다. 친구야.


친구들을 보내고 방구석으로 돌아오면서 카톡을 날립니다.

"고맙다. 친구들아. 잘 살아갸자."

쓰는 자라는 녀석이 오타작렬입니다. 좀 취했나 봅니다.

헤롱아저씨도 문학소년도 좀 기분 좋은가 봅니다.

퍽퍽한 일상 속에 가끔은 이런 날도 좀 있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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