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 Oct 31. 2018

사라진 남편 귀여운 저녁

사랑해서 좋은 날들

의성이를 재우고, 저녁에 잠깐 작업할 일이 있어 책상을 빌려썼는데 끝내고 찾아보니 남편이 없었다. 거실에도 없고 화장실을 다 열어봐도 없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나? 했는데 쓰레기통도 그대로. 크지도 않은 집 안을 헤메다 혹시나 해서 의성이 방 문을 열었더니 저 구석, 의성이를 끌어안고 누운 남편이 어스름하니 보인다. 문을 열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으앙, 하고는 의성이가 돌아누워 남편 머리에 다리를 턱 얹는데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아니 잘 재워 놓은 애기 방에 들어가서 왜 자고있어.


의성이 몰래 목소리를 죽여 여보야 일어나, 하는데 프로젝트 준비에 며칠 못 잔 남편은 영 정신이 없다. 어 어 일어나야지 하다가도 다시 헤메어 몸이 쓰러진다. 편안한 소파도 아니고 이불 내어놓은 거실도 아니고. 기왕 잘 거면 제대로 자지...타박하려다가도 의성이가 보고싶어 방에 몰래 들어갔을 남편 생각을 하니 안쓰러움에 잔소리도 쏙 들어간다. 인기척에 한번 깨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자리를 못 잡던 의성이도 이젠 사뭇 아빠를 베게삼아 큰 대자로 뻗었다. 아직 눈을 못 뜨는 남편을 한 번 도닥이고, 그런 아빠 위를 또 한번 구르는 아들을 보며 나는 웃는다. 오늘도 귀여운 저녁이고 그래서 또 힘이 난다. 쉽지는 않아도 사랑해서 좋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약 짜 주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