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좋은 날들
의성이를 재우고, 저녁에 잠깐 작업할 일이 있어 책상을 빌려썼는데 끝내고 찾아보니 남편이 없었다. 거실에도 없고 화장실을 다 열어봐도 없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나? 했는데 쓰레기통도 그대로. 크지도 않은 집 안을 헤메다 혹시나 해서 의성이 방 문을 열었더니 저 구석, 의성이를 끌어안고 누운 남편이 어스름하니 보인다. 문을 열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으앙, 하고는 의성이가 돌아누워 남편 머리에 다리를 턱 얹는데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아니 잘 재워 놓은 애기 방에 들어가서 왜 자고있어.
의성이 몰래 목소리를 죽여 여보야 일어나, 하는데 프로젝트 준비에 며칠 못 잔 남편은 영 정신이 없다. 어 어 일어나야지 하다가도 다시 헤메어 몸이 쓰러진다. 편안한 소파도 아니고 이불 내어놓은 거실도 아니고. 기왕 잘 거면 제대로 자지...타박하려다가도 의성이가 보고싶어 방에 몰래 들어갔을 남편 생각을 하니 안쓰러움에 잔소리도 쏙 들어간다. 인기척에 한번 깨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자리를 못 잡던 의성이도 이젠 사뭇 아빠를 베게삼아 큰 대자로 뻗었다. 아직 눈을 못 뜨는 남편을 한 번 도닥이고, 그런 아빠 위를 또 한번 구르는 아들을 보며 나는 웃는다. 오늘도 귀여운 저녁이고 그래서 또 힘이 난다. 쉽지는 않아도 사랑해서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