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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Dec 09. 2018

아가를 만나니 날 사랑하게 된다

사랑 좀 늦게 배운 엄마

임신했을 때 몇 번이고 되뇌던 말이 있었다. 제발 아빠 닮아라.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도저히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 닮게 해 주세요, 저 닮으면 안 돼요. 아시잖아요 아시잖아요 하고 기도했다. 난 살며 내가 좋다는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칭찬을 해 주면 상냥함에서 나온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날 낳고 속이 상해 울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무슨 소린지 안다. 나이 들고 보니 엄마는 기준이 참 높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내가 남이었으면 근처에도 안 올 거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것도 무슨 소린지 안다. 그냥 아빠가 싫어하는 부분에 대한 표현방식이 그랬다.) 두 분 다 사랑은 많이 부어주셨을진대 그 기억들은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되어 난 평생 그것만 믿고 살았고, 그런 내가 싫었으니 나는 내 눈에 콩깍지라고 아가가 제발 잘 생긴 남편을 닮았으면 했다. 남편이 온유하니 남편을 닮았으면 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이니 남편을 닮았으면 했다. 내 고집, 성격 외모 모든 것에서 다 자유로웠으면 했다. 날 닮으면 사랑할 수 있을까 얼마나 내 속을 썩일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누나 왜 그래요 둘 다 닮아도 돼요 지현아 왜 그래 난 너 닮으면 더 좋을 거 같아 하는 말이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의성이가 태어나고 나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싫다 싫다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라더니. 어쩜, 어쩜 이렇게 엄마 판박이일 수가. 까무잡잡한 나와 달리 뽀얀 남편을 닮은 것을 제외하면 아, 자는 얼굴을 보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우는 얼굴을 보는데 이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시간이 좀 지나 내 어릴 적 사진을 꺼냈는데 여자 버전 의성이가 사진 속에 있었다. 이걸 어쩌나, 이걸 어쩌나 하는데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났다.


난 겁이 났다 사람들이 의성이를 안 예뻐할까 봐. 의성이가 많이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는데 엄마 닮아 고생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의성이를 눈에 꿀이 떨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 의성이가 너무 귀여워요. 언니 의성이가 너무 잘생겼어요. 애기 엄마 애가 어쩜 이렇게 예뻐요 눈이 어떻게 이렇게 커요 지현 씨 애가 너무 순해요 너무 귀여워요. 다 사랑이라고 생각해 마냥 고마웠다. 예뻐해 줘서 고마워,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를 입에 달고 지냈다. 내가 엄마니 예뻐 보이는 아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의성이를 보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의성이가 너무 예쁘다. 엄마라서 그런가? 날 닮았는데 너무 예쁘다. 떼를 써도 예쁘다. 화나서 우는 모습이 안쓰러운데 귀엽다. 웃으니 눈이 초승달처럼 되는구나 어쩜 이렇게 예쁘게 웃니, 근데 우리 참 닮았다 의성아. 신기하네 네가 예쁜데 우리 참 닮았다. 날 닮았으면 예쁠 리가 없는데 네가 너무 예쁘다.


엄마가 좋다고 날 꼭 끌어안고 가슴에 묻힌 의성이를 쓰다듬다 웃음이 났다. 가슴이, 머리가 트이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내가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나도 이렇게 사랑받았겠구나. 네 눈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데 누군가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해줬던 거구나. 나도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었겠구나. 밀려들어오던 그 모든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의성이를 낳고 마음에 괜찮다고 도장이 찍어진 것 같았다. 괜찮아. 넌 괜찮은 사람이었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었어. 세상에 정말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게 있었어. 누군가가 온전히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게 정말 있는 거였어. 내가 널 사랑하듯, 나도 아마 그랬을 거야. 나도 그랬을 거야. 이제 널 좀 사랑하라고 의성이를 날 닮게 주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제야 남편이 날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로, 진실되게 믿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게 기브 앤 테이크는 아니었던 셈이다. 내가 잘해야만 오는 게 사랑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랑을 모르는 아내를 만나 남편이 마음고생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섭섭해하던 남편의 마음을 알았다. 사랑을 알게 되니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너를 사랑하니 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방식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달리 보였다. 육아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더니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의성이를 데리고 놀러 나갔는데 한 아기 엄마랑 마주쳤다. 의성이를 한번 보고 Hi cutie 하고 인사를 해 주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눈이 똥그랗게 되어선 까르르 웃더니 말했다. 애기 너무 귀엽다 하고 있었는데 너 보니까 너랑 애기랑 똑같이 생겼어! 그래서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I know!


나도 알아. 그리고 그게 너무 좋아.


아가 얼굴은 크면서 엄마도 닮았다 아빠도 닮았다 하며 변한다는데 이젠 아무래도 좋다. 누굴 어떻게 닮고 어딜 닮아도 다 좋을 것이다. 엄마 성격을 닮으면 엄마가 많이 얘기해주지 뭐. 아빠를 닮으면 아빠가 이해해줄 거야. 마음이 자유로워 좋다. 참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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