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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1. 2018

이 길이 참 좋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성이는 아침에 배시시 웃는다.


출근할 시간 즈음이 되면 의성이는 눈을 뜬다. 예전엔 새벽에 일어났는데, 요즈음은 놀다가 늦게 자는 탓이다. 깽, 소리가 나면 (우리는 의성이 울음 시작하는 소리를 깽, 한다고 표현한다. 아이코 의성이 깽 하네!) 몰래몰래 주방에 가 지난밤 해동해놓은 모유를 꺼내 의성이 아침을 준비한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리면 의성이가 기어 나오는 소리이다. 방문을 열고 의성아 잘 잤어? 하면 눈을 마주치고 배시시.


꼭 껴안고 얼굴을 비비고 의성아 잘 잤어 잘 잤어? 인사하다 보면 아침 에너지가 찬다. 하루 힐링 포인트는 여기서 다 벌어간다. 일하다가 지칠 때 아침 의성이를 생각하면 힘이 번쩍번쩍 솟는다. 그렇지 의성이가 또 배시시 했지. 배고프다고 울더니 맘마 주니까 꿀꺽꿀꺽 다 먹고 또 배시시 했었지.


의성이 13개월. 이제는 문도 혼자 여는 아가.


밤에는 의성이가 말이 많아진다.


혼자 재워야 한다 울려 재워야 한다 말이 여러 가지 있는데 우리 집은 결국 내가 데리고 재운 뒤 나오는 걸로 결착이 났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의성이가 자기까지 고작 두세 시간. 그 시간을 놓쳐야 한다는 게 도통 납득이 안 갔다.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하자 하고 아빠 뽀뽀받고 방 불을 끄고 들어가 나란히 눕는다. 누워있는 것도 잠시, 의성이는 말이 많아진다. 마마마마-마바 바 마마? 므아! 마... 마마마마 음마 음마... 말하다 웃다 화를 내다 다시 말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의성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건 알겠다. 옹알이에 그랬어? 오늘은 그랬어? 대답을 하다 보면 어느새 행동도 커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잠잠히 자는 건 온데간데없고 몸 위에서 뒹굴고 이거 가리키고 저거 가리키며 의성이는 논다. 제일 즐거운 시간이다. 방 불은 꺼졌고 주변엔 다칠 물건 하나 없으며 이불을 끼고 엄마는 화장도 지우고 의성이는 편안한 잠옷 차림.  뒹굴뒹굴 구르며 안기도 하고 뽀뽀도 하고 노래도 부르다 보면 의성이가 서서히 놀다 앞으로 폭 폭 고꾸라지는 순간이 온다. 때로는 팔 안에서, 때로는 엄마 배 위에서 잠든 의성이를 토닥여 쓰다듬고 나오면 하루 일과를 다 마친 기분이 든다. 설거지도 젖병 소독도 빨래도 좀 전에 본 의성이를 돌아보다 보면 짜증이 나려다가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뭐가 날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배시시가 뭐라고. 옹알이가 뭐라고. 결혼 전 나는 공격적이었다. 열심히 사는 여자이고 싶었다. 일하고 돈을 벌고 내가 내 몸을 건사하고 동생을 챙기고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여행 가고 쇼핑하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공격적으로 일하고 전투적으로 야근했으며 할 수 있는 봉사는 다 했다. 뿌듯했고 충만했다. 의성이를 낳고, 내 뜻대로 된 것이 없었다. 내가 당연스레 하던 것들, 일, 이젠 생각지도 못할 야근, 이젠 민망한 당당한 연봉협상(갑작스러운 병원 방문에, 아침에 아기 분수토에 하루 지각하고 결근하다 보면 당당함은 그냥 뻔뻔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연봉협상에선 괜스레 기가 죽게 된다). 모든 게 다 바뀌었는데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행복하다. 이게 엄마 호르몬인가. 나도 아줌마가 다 된 건가. 어렸을 때 싫다고 도리질 치던 삶을 살고 있으니 대체 이게 뭔가 싶다. 의성아, 네 덕분에 새로운 걸 많이 안다. 예전엔 한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길인데 엄마는 이 길이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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