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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유 Feb 23. 2024

적극적 방황과 탐색

내가 누군지 모른 채  37살이 되었다 #2

여보 나 정말 육아휴직 하면 안 될까?


직장 문제로 시작된 두 번째 사춘기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틈만 나면 나는 육아휴직을 무기로 삼아 아내를 협박(?)했다.

겉은 육아휴직이었지만 속 마음은 "나 지금 정말 힘든 것 같아 여보.. 잠깐 좀 쉬면서 시간을 가져보면 안 될까?"라는 외침에 가까웠다.


아내도 말리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분명 좀 쉬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데, 막상 휴직을 하자니 삶을 도피하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고작 상사와의 갈등으로 이렇게 쉽게 무너져서 도피성 휴직을 하려는 건가?


하루에도 마음이 수십 번 왔다 갔다 했다.

어제 퇴근할 때만 해도 괜찮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출근 후 쏟아지는 상사의 질책과 스트레스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결정을 쉬이 내릴 수도 없었다. 난생처음 온라인이긴 하지만 사주와 신점도 봤다.

한 곳의 말도 신뢰할 수 없어 3군데를 봤다.

결론은 신들도 다들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

"어떤 분은 무조건 쉬라 하고.. 어떤 분은 절대 쉬지 말고 버티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나름의 위로를 받았다.


며칠 후 먼저 육아휴직을 했던 동료 L을 우연히 출근길 회사 앞에서 만났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그를 붙잡고,, 나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형,,, 저 사실 육아 휴직을 낼까 고민 중인데요.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동료는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고는, 본인의 의견을 덧붙였다.

"휴직보다는 우선 몇 주간 휴가를 먼저 내보는 건 어때? 가족 돌봄 휴가라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게 있어서 그걸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L의 말처럼 가족 돌봄 휴가는 1년에 10일 가족 돌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물론 의도는 가족에게 좀 더 시간을 할애하라는 제도이지만 다들 각자 상황에 맞추어 쓴다고 한다.

단, 무급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 육아휴직 대신 나 연차랑 가족 돌봄 해서 4주 정도만 쉬어 볼게."

"나 지금껏 9년 동안 열심히 일만 한 거 알잖아? 이 번 기회에 나를 좀 돌아보려고..."


다음 날 출근해서는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저 4주 간 잠깐 쉬고 올게요..."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땐 몰랐다. 이 4주가 가지는 삶의 임팩트가 이렇게 클 줄은...


그리고 처음 알았다. 난 37살이 될 때까지도...  나를 몰랐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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