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춘기의 시작
"대기업 차장, 두 아이의 아빠, 자가 마련"
겉으로 보기에 나는 괜찮았다. 남들이 보기엔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스타 시대에는 뉴노멀이 되어버린 스펙이긴 하지만 난 자부심을 가졌다.
PC방도 주변에 없고 자전거를 타고 꽤 많은 시간을 갔어야 하는 지방 동네에서 태어나
서울에 대학을 가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간 나는 늘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직장에서도 운이 좋아 특진을 두 번이나 하고, 30대 중반에 나는 회사에서 동기들보다 아니 선배들보다 빠르게 차장이 되었다. 대출을 받긴 했지만 30평대의 내 집도 생겼다.
모든 게 문제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슬금슬금 내 안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점이...
"여보 나 육아휴직 하면 안 될까...?" 조심스레 와이프에게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집 사느라 대출받은 게 얼마인데 육아휴직이야...? (웃음) 일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래? 요즘 무슨 일 있어?"
일이 있는 건 맞았다. 지금껏 승승장구하던 직장생활 중 내게 '2023년은 유독 힘든 한 해였다.
갑작스레 팀을 옮기게 되었고 신규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 당시 스스로 프라이드가 있었던 나는 사사건건 팀장과 마찰이 잦았다. 어느 순간 마찰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혼나는 분위기로 변하긴 했지만...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아... 회사 가기 싫다...(한숨)"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느낌을 느끼면 바로 사직서 제출한다던데. 난 그럴 깜냥도 그럴 처지도 되지 못했다.
스스로 내가 부족한 거라 스스로 세뇌하며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텼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지금껏 직장생활을 편하게 한 거니 이 상황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긍정(?)의 회로'를 돌렸다. 그날의 스트레스는 퇴근 후 반주를 하며 흘러 보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까? 이전에는 트러블이 될 수 있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넘어가고,,
어느 정도 처세술도 배워 한 단계 성장했다고 여겼다.
문제는 예상치 못하게 몸에서 드러났다.
면역력이 극심하게 떨어져 인후염, 후두염 등 각종 염증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주로 흘려보냈다고 여긴 스트레스가 몸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 복리처럼 불어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의 몸에서 시작된 적신호는 회사생활, 가정생활까지 급속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체력이 떨어지니 쉽게 피로해졌고, 쉽게 피로해지니 짜증과 예민이 늘어갔다.
예전에는 분명 웃으며 넘겼던 일들이 이제는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졌고,,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도 모른 채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5살 된 딸이 출근 날 나에게 말한다.
"아빠,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그런 딸을 부둥켜안고 나도 속으로 말했다.
"나도 회사 가기 싫어!!"
그렇게 두 번째 사춘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