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모른 채 37살이 되었다 #3
40세가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는다
by 공자
지난겨울 대학교 동창회였다.
오랜만에 만난 30대 중후반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과거 20대 초반의 치부를 서로 놀려대며(?)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 P는 우리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다. 타 대학을 다니다가 2년 늦게 입학한 그를 우리는 'OO 옹'이라는 말로 종종 부르기도 한다.
그를 보며 장난기 많은 친구 K가 "이제 나이가 '불혹'에 가까워졌으니 유혹에 흔들리면 안 된다"며 놀려댄다. 유쾌한 P는 "인생에서 '불혹'이 어딨어? 난 오늘 여기 오는 지하철에서도 흔들렸는데.."라며 부드럽게 받아친다.
그날 이후 '불혹'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잊혔다.
서른일곱, 이젠 30보다는 40이라는 숫자가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40은 아직 요원하다.
대학 친구 J는 활동적이지 않은 나의 손꼽히는 친구로,
집도 가깝고 하는 일도 비슷해 퇴근길 짬을 내 여러 가지 고민을 나눈다.
최근 우리 대화의 단골주제는 '커리어'와 '일상의 단조로움'이다.
J는 화려한 커리어 이력을 가지고 있다.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IT 대표기업 중 한 곳에서 회사의 성장기를 경험했고, 좋은 조건으로 또 5개 기업 중 한 곳으로 이직까지 성공했다.
그와 달리 나는 한 회사에서 묵직하게 버텨왔다. 다행히 운이 좋아 승진이 빨랐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 우리 둘에게 커리어 관점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바로 '소통의 문제'였다.
지금껏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이 강점이어서 이직도 성공하고, 승진도 빨리했는데... 소통의 문제라니?
J는 회사 특성상 해외 업체와의 일이 많은데 관련자들과의 업무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나는 상대의 감정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는 게 점차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또 하나, 반복되는 일상에 점차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10년 차 직장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달려왔다..
육아에 엄청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아니었지만, 주말이면 아이들과도 충분히 놀아주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런데 뭔가...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새로움이 없다고 해야 할까?
10년 연애했던 연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권태로움이 나의 고요한 일상에 들이닥쳤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고, 내일은 오늘의 재탕인 느낌. 소소한 재미는 있었지만 더 이상 임팩트 있는 변화는 내 삶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
그렇게 불혹을 3년 앞두고 일상의 위기가 찾아왔다.
과연 나는 흔들리지 않는 40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