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유 Feb 26. 2024

Chat-GPT 그리고 ‘중간항로’

내가 누군지 모른 채 37살이 되었다 #4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일상의 권태로부터 오는 무료함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 그렇게 난 4주간의 휴가를 쓰게 됐다.


첫 1주는 가족들과 그간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내고,, 2주 차부터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하원할 때까지 확보할 수 있는 약 7시간의 시간, 이 시간만큼은 내가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육아 루틴이 시작되면서부터 퇴근 후 1시간, 출근 전 30분 정도가 오롯이 내가 확보활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퇴근 후 밀려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온전한 1시간 30분도 아니었다.

그런 내게 7시간이 주어지다니!


2주 차 첫날, 무얼 처음 해볼까 하다가 Chat-GPT에게 요즘 나의 고민을 얘기해 보기로 했다.


 : 난 37살의 회사원이야. 예전에는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고 퇴근해서도 일을 했었어

GPT : 그렇게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계셨다면 정말 멋진 일이죠! 현재도 그런 열정을 유지하고 계시거나,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나 : 작년에 일에 대한 변화가 컸었어. 트러블이 좀 생겼었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설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었던 것 같아. 그게 1년간 지속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고 좀 지친 것 같아.

GPT : 일에서의 스트레스와 트러블은 정말 힘든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업무 환경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나 : 음.. 그래도 내가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어. 근데 최근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걸 느껴. 면역이 떨어져서인지 감기도 자주 걸리고...

GPT : 스트레스와 건강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고, 이는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나 : 근데 또 문제는 일상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는 거야. 지금 내 나이가 37인데 이제 인생에서 큰 이벤트가 없는 기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에서 예전만큼 열정이 생기지가 않아.

GPT : 37세에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종종 "중년의 위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자아 정체성을 다시 찾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중략)


내 눈에 딱 들어온 키워드는 '중년의 위기'였다


'중년의 위기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난 아직 30대인데.. 중년이라니.. (헛웃음)


처음엔 GPT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최근 친구 J와도 유사한 고민을 얘기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 정말 중년의 위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중년의 위기와 관련한 여러 가지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중 2가지 책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라는 책이다. 43년간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돌봐온 정신건강의학자인 저자가 마흔이 된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위로받았던 점은 저자 역시 37살이 된 시점에,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고 열정 또한 사그라들면서 고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이를 "중년의 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이보다 나의 상황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있을까? 책을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모두 얻었다.


너는 현재 너를 잃은 것 같겠지만, 더 크고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中


두 번째는 이번 브런치 글의 모티프가 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이다.

 

심리학자 칼융의 이론을 풀어낸 서적으로 마흔이라는 시기를 인생의 '중간항로'라고 정의한다.

지금껏 사회가 원하는 기준으로 충실히 살아온 개인(12세~40세)이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 스스로의 인격을 재정비할 수 있는 중간 여정이라고 말한다.


40살이 가까워지면서 지루함, 권태, 우울감을 경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이 중간항로에 접어들기 때문이라고..


공자는 분명 마흔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고 표현했는데, 칼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표현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지금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거라고... (GPT 정말 고마워!)

그러니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지금 이 과정은 단단한 40대를 만들어갈'중간항로'일 뿐이라고.


그렇게 37살 중간항로에서 '온전한 나'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자의 ‘불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