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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유 Feb 28. 2024

잃어버린 2년 : 스물, 스물 하나 (1)

옛 그림자와의 재회

ㅣSo What? 그림자를 만나라ㅣ

이젠 알겠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상의 지루함, 권태, 우울감의 이유를.

서른일곱, 나는 ‘중년의 위기’ 한복판에 서있다. 2차 성인기에 접어들기 전 ‘중간항로’에 진입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공통적으로 책에서는 말한다. 그간 소홀했던 나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한다고.


“그림자로 일컫는 내면의 목소리를 의식 수준에서 만나야 한다. 내가 부러워하거나 싫어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신 안에서 모두를 받아들여야 한다.

-제임스홀리스,『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다 좋다. 그렇다면 내면의 목소리는 대체 어떻게 듣는다는 말인가?

한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림자를 의식 수준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왕도는 ‘없다’였다.

하는 수없이 지난 37년의 삶을 시기별로 쪼개어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그림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ㅣMBTI보단 혈액형이지, 스무 살 그 시절

유년기의 나는 내성적이었지만 주목받기는 좋아했던 아이였다. AB형, ‘천재 아니면 바보 또는 돌아이’

요즘에는 MBTI로 자기소개를 하지만 그때만 해도 혈액형이 모든 걸 지배하는 시대였다. 


‘B형‘은 나쁜 남자, ‘A형‘은 소심한 남자, ‘O형‘은 성격 하나만(?) 좋은 남자 등으로 일종의 캐릭터가 부여될 때였다. 미팅을 나가 분위기가 좋다가도 'AB형'이라 소개하는 순간 싸해지는 분위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말도 적고 수줍음을 꽤나 탔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교 전교회장, 중학교 전교 부회장을 역임(?)했다.


치열했던 입시과정을 뚫고 시작된 대학생활,

그 당시 하루하루가 축제 같았다. 2000년대 중반 그 당시만 하더라도 1학년은 놀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물론 개념 있던 친구들은 그때도 학업에 열중했다)

난 이 시기를 수험생활을 보상받는다는 심정으로 철저히 즐겼다.


당시 통학루트가 비슷했던 동기 6명이서 일종의 패밀리(소위 패거리)를 결성해, 수업이 끝나고 저녁만 되면 근처 생고깃집 또는 술집으로 향했다. (물론 다른 것들도 많이 하긴 했지만...)


1인분 2,500원. 술 값까지 포함하더라도 한 명당 만원이면 충분했다. 그때 나눴던 대화가 자세히 생각나진 않는다. 대강 “우리 패밀리는 남들과 다르다, 우린 잘 논다(?). 대학 오니 고딩 친구들과는 대화가 잘 안 된다 “등의 지금 생각해 보면 실소가 나올 수준의 얘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스물의 싱그러움을 만끽했다.


ㅣ내가 아닌 나, 스물하나ㅣ

1년을 철저하게 놀기만 했던 대가는 전공선택의 기로에서 찾아왔다. 당시 내가 들어간 학교의 입학시스템은 학부로 입학해 1학년 성적 토대로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처참했던 1학년 성적으로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고 유망(?)하다는 한 학과에 함께 놀던 동기 몇 명과 나란히 들어가게 된다.


그때 첫 연애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여자친구는 있었지만 대부분 3달도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고 ‘제대로’ 된 연애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혼도하고 아이도 있는데 뚱딴지같은 연애 얘기냐고? 

이 시기 내 그림자가 형성되었고, 지금껏 한 번도 이 그림자에 대해 터놓고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글을 쓰기 전에는 인지조차 못할 정도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의 그림자는 그 당시의 '내가 아닌 나'였다


당시 여자친구 H는 분당에 살고 있었다.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땐 ‘천당 대신 분당’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요가 몰리는 지역이었다.

소개팅을 통해 만난 ‘H‘에게 ’ 우리 집‘도 잘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어도 충분했을 텐데.. 당시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하며 거짓을 보태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거짓으로 포장된 ‘나’로 연애를 이어가게 됐다.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포장지를

쓰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군대에 입대 후, H는 모든 걸 알게 되었고.. 그녀가 어학연수를 가게 되며 자연스럽게 이별하게 된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시작된 연애로 인해 H와 나, 우리 가족 모두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를 내 인생의
'잃어버린 시간'이라 정의하고 다신 꺼내볼 수 없는 깊숙한 곳에 묻어둔다.

내 인생 가장 부끄러웠던 시기로 기억하며,,,
(찾았다. 내 인생 가장 부끄러운 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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