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볼줄 아는 나의 타고난 유전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
그 안에 걱정이 있어 잠 못 이룬 적이 있었고,
가끔 황홀한 시절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삶은 가느다란 흔적을 남기며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나의 어머니가 귀신을 보시는데, 그게 나에게 유전이 된 것이다. 자다가 침대 위로 올라오는 섬뜩한 귀신의 팔과 손.
나에게 말도 걸어오는 귀신에게 한마디도 하기 어려운 나는, 죽음 저편의 세상이 친숙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어느날 돌아가시면서 죽음의 공간이 휘어져 있어 우리 현실엔 두개의 공간이 뒤섞여 있다고 전해주고 숨을 거두셨다.
모든 게 꿈인 걸까?
만남도 사랑, 헤어짐도 이미 정해진 것들을
겪어가는 걸까?
오늘 남은 시간도 사라질 것이다.
한참 나를 못 봤던 귀신들이 멀리서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일이 나로선 기대되지만,
정해진 이 시간과 공간을 누군가 깨뜨려 보는 것도
불안을 넘어 새로운 잉태일 것이라는
그러한 말들을 예측해 본다.
삶이 다해서 가는 휘어진 공간을 일탈해, 현실 공간의 나에게
귀신이 또 나타나, 예전처럼 물어올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 이렇게.
지금은 이 현실공간이 죽음의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하루하루 고통과 희망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 나의 삶을 견뎌보려 한다.
귀신 볼줄 아는 나의 유전을 축복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