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정치 놔두면 ‘나치당’ 판친다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평> 칼럼(2023-12-07)
* 이 칼럼의 필자 제시 제목은 "난제 해결의 주춧돌, 자유와 자유사회 신뢰" 입니다.
미국 유럽 일본 선진국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위협 요인 급증
대응의 토대는 자유사회 신뢰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앞뒷면
바이마르공화국은 타산지석
우파 정치권 각성 더없이 중요
지난 몇 년간 국제질서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 ‘간전기(間戰期)’ 같은 ‘대혼란’ 상태로 접어들었다.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은 호전적 성향을 과시하고, 미국·유럽·일본도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설립된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그 기능이 사실상 무기력해지고, 국가들의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류의 공멸 가능성을 가진 기후변화, 기술 격변, 핵전쟁 위기 등이 현재화하는 대전환기지만 국제적 공조는 퇴조 중이다.
지정학·기술·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돼 자유와 번영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도전도 거세다. 정치인들은 극한 대립과 분열로 정쟁에 매몰되고, 체제 수호와 국가적 난제 해결은 더는 정치와 언론의 주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강성 팬덤은 집단적 언어폭력과 물리적 가해 위협 등으로 추앙하는 정치인과 정당 비판자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가짜뉴스 등 기술 오남용에 의한 정치적 선택의 왜곡도 보편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권력은 이들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자유와 자유사회에 대한 명백한 이해와 믿음이 난마 같은 현 상황을 해결하는 근원적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와 자유사회를 수호하려는 의지야말로 당면한 난제들에 대한 개인적·사회적·국가적 인식 재정립의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자유주의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명저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에서 자유와 자유사회의 본질과 특징을 명백하게 설명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고, 집단행동의 편의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 상황에서 자유 제한의 구체적·가시적 이득은 확실해 보이나, 그로 인해 희생되는 이득은 그 속성상 알 수 없고 불확실하다. 자유사회가 내거는 약속들은 언제나 불확실한 가능성일 뿐이며, 이는 개인들에게 확실한 어떤 것이 아니라 기회일 뿐이란 뜻이다. 따라서 자유가 한 사회의 최고 원칙이 되지 못하면 이 치명적 약점 때문에 서서히 침식된다.
또 자유사회는 법으로 강요된 의무를 넘어 책임감에 따라 행동하고, 개인 노력의 결과인 성공과 실패를 모두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다. 이 자유와 책임의 상호 보완성은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자유를 주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책임 부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강제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질서를 도입하기 위해서 고안한 핵심 장치다.
자유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그의 가치관에 달렸다. 그러나 자유를 신봉한다는 것은 각자가 정상적인 동기와 자제력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해서, 자신을 다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종 심판관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탐탁지 않더라도 그의 목적 추구를 막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각 개인이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할 수 없고, 자유를 진정으로 알 수 없다.
또, 자유사회에서 개인은 자유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평가받고 존중받는다. 자유 없이는 도덕적 평가와 존경이 무의미하다. 예컨대, 누군가의 선행이나 악행이 모두 보상·규칙·강제 때문이라면, 미덕은 미덕이라 할 수 없고 선행은 칭송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유는 선을 행할 기회이기도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나쁜 일을 할 기회이기도 할 때만 그렇다. 즉, 행동의 자유는 그릇된 행동을 할 자유를 포함한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만 강제에 의하지 않은 자율 준수를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우파 전체주의인 히틀러의 나치당에 전복된 것도 자유와 자유사회에 대한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공작적 합종연횡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던 기성 우파 정치권이 나치당의 정치폭력, 선동과 조작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와 자유사회에 대한 신념에 입각할 때만 현 난국은 합리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