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디지털법’이 몰고 올 지각변동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4.04.01)
EU는 지난 3월 7일 세계 최초로 게이트 키퍼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 Act)’을 전면 시행하였다. 애플·메타(페이스북)·알파벳(구글)·아마존·MS·바이트댄스가 사전지정 요건에 따른 규제 대상이다. 공정하고 개방된 디지털 시장 조성을 위해서 DMA는 서비스의 경쟁업체 개방, 획득 이용자 개인정보의 무분별 활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구체적으로 규제 대상 플랫폼의 자사 상품·서비스 우대, 자사 소프트웨어 끼워팔기, 개인정보 부당 이용 등을 금지한다. 위반할 경우 해당 기업 연간 글로벌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시정명령에 불복하면 과징금 상한을 20%까지 높일 수 있다. 심지어 조직적 침해로 간주되면, 해당 기업에 사업의 분할매각(divesture) 의무화나 관련 추가 서비스 금지 등 제재도 할 수 있다.
EU는 DMA를 전면 시행하면서, 규제 대상 6개사로부터 이 법 준수를 위해 취한 조처를 보고받았다. 그 보고를 토대로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애플·알파벳·메타를 DMA 관련 첫 조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EU는 DMA에 근거해서 애플과 구글의 앱스토어 규정을 살펴보고, 구글 검색 결과에서의 자사 서비스 우대 여부, 애플의 사파리 외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 방해 여부, 메타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광고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할 때 사용자에 충분한 선택권을 주는지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EU는 애플의 새로운 수수료 구조와 아마존의 마켓플레이스 순위 노출 관행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도 했다.
EU는 또한 작년 8월 25일부터 ‘디지털서비스법(DSA:Digital Service Act)’의 시행으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의 가짜·혐오 정보와 음란물 등 문제 있는 콘텐츠 유통의 책임을 플랫폼 기업에 묻기 시작했다. DSA는 플랫폼 사업자들을 네 영역(Tier)으로 분류했는데, 가장 강한 규제를 받는 ‘영역 4(Tier 4)’에는 19개 빅테크가 포함되었다. 월간 이용객 4500만 이상인 17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X(트위터), 유튜브, 스냅챗, 링크드인, 핀터레스트, 아마존, 부킹, 알리익스프레스, 잘란도, 구글 쇼핑, 위키백과, 구글 맵스, 구글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과 검색엔진 사업자인 구글과 MS 빙(Bing)이 대상이다.
DSA는 이들 업체에 불법·허위·유해 콘텐츠에 대한 관리 의무를 부과했다. 이들은 불법정보 삭제·차단, 다양한 소비자·이용자 피해 예방조치 시행, 불법 콘텐츠 신고 메커니즘 구축, 범죄 의심정보 사법당국 신고, 불법적 콘텐츠 반복 제공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 중단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이들은 불법 상품·서비스 제공·판매 관련 정보를 알게 되면 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야만 한다. 이 법 위반 기업에는 연간 글로벌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EU는 DSA에 따라 규제 대상 빅테크들을 전방위 압박하고 있다. 우선 규제당국은 MS 빙, 구글 검색,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틱톡, 유튜브와 X에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짜 콘텐츠)’ 위험 예방 대책 정보 제공을 공식 요구했다. 그 후 X(트위터)와 틱톡이 가장 먼저 조사 대상이 되었다. 작년 12월에는 X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허위 정보가 유독 확산됐다며 조사에 착수했고, 금년 2월에는 틱톡의 미성년자 콘텐츠 중독 유발 알고리즘 적용 여부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이어서 3월에는 유럽 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 1억 430만 명(작년 4월 기준)인 중국업체 알리익스프레스의 DSA 위반 관련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EU는 알리익스프레스가 가짜 의약품·건강 보조식품 등 소비자 건강 위협 제품 판매 금지 약관을 준수하지 않고, 미성년자 음란물 접근 차단 노력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대규모 이용객에도 불구하고 알리익스프레스가 소비자 분쟁 조정 시스템 구축, 입점 업체 추적·관리, 광고 관리, 품질 등 여러 측면에서 DSA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시행과 집행 활성화는 디지털 시장 생태계 전반의 엄청난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우선 이 법들의 시행 후 게이트 키퍼 디지털 플랫폼들은 더 이상 폐쇄적 생태계를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EU의 DMA 시행 이전 애플은 금년 3월부터 EU 27개국 사용자를 대상으로 애플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앱마켓에서도 앱을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애플은 작년 11월까지 앱스토어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며 소송을 진행하는 등 거세게 저항했으나 결국 백기 투항했다. 애플은 모바일 앱 결제에서 애플 시스템을 사용할 때 통행세처럼 부과해 온 인앱 결제 수수료도 30%에서 17%로 낮췄다. 이는 2008년 앱스토어 출시 이래 15년 만에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꾼 변화다.
구글 역시 지난달 EU 지역 검색에서 자체 서비스 노출 비율을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항공편이나 식당 검색에 경쟁업체들 페이지를 더 많이 보여주고, 구글에서 검색한 내용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던 기존 방식을 제한할 수 있게 서비스를 바꿨다. 이러한 빅테크들의 대전환은 과거 MS 관련 소송 이후처럼 디지털 생태계와 혁신 자체의 대변혁으로 이어질 토대가 될 수 있다.
둘째, 게이트 키퍼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경제적 논쟁을 넘어서 EU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디지털 관련 정책의 표준 마련과 공조에 나설 것이다. 이미 미국 법무부는 금년 3월 애플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애플이 자사의 폐쇄적인 생태계를 이용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면서 비슷한 서비스나 제품을 출시한 다른 업체들을 경쟁에서 배제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 사태로 애플은 과거 MS처럼 관행을 바꾸거나 사업 분할매각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법무부는 이미 구글 상대 검색엔진 독점 소송을 진행 중이고, 미 연방통상위원회(FTC)는 아마존과 메타가 시장지배력으로 경쟁을 제약하고 있다고 고소하기도 했다.
일본의 공정취인위원회(JFTC)도 플랫폼 관련 법 제정을 추진 중이며, 우리나라·호주·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도 빅테크 규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서 구글과 애플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제재했고, 인도네시아는 자국 시장에서 틱톡의 전자상거래 기능을 금지했다. 이러한 추세는 머지않아 기존 경쟁정책과 별도로 디지털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새로운 독자적 경쟁정책과 규제의 보편화와 세계적 공조체제 완성으로 나아갈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