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총선 결론은 ‘정치제도 대전환’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4.4.24)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이 선거로 정부와 여당은 칼끝을 붙든 채 싸움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하고, 야당의 이재명 대표와 비례 정당으로 12석을 얻은 조국 대표는 연일 기세등등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났을까?
이번 선거에서 전국 투표율은 67%로,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했다. 정당별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5%, 국민의힘 45.1%, 여타 정당과 무소속 4.4%였다. 여야의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61석(총 지역구 의석수의 63.3%), 국민의힘 90석(35.4%)으로 무려 71석 차이가 났다. 이는 득표율 차이는 5.4%이나, 의석수 차이는 27.9%임을 의미한다. 이 차이는 한 표라도 더 많으면 승리하는 소선거구제의 전형적 현상이다.
선거에서 득표율 1·2위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2% 미만 14개(전체 의석수의 5%), 2~5% 미만 25개(10%), 5~10% 미만 54개(21%), 10~20% 미만 84개, 20% 이상 77개로 나타났다. 이는 전 지역구 의석수의 36%인 93개가 10% 미만 표차로 당락이 갈렸음을 의미한다. 주로 이 선거구들은 선거 때마다 투표를 달리하는 경향을 가진 ‘스윙보터들(swing voters)’이 당락을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이번 선거가 정당 표방 이데올로기나 정책 경쟁이 핵심 변수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선거에서 이데올로기와 지역구도에 따른 여야 득표율은 거의 고착된 상태였다. 심지어 수도권과 도시지역에서도 이는 거의 상수였다. 그러므로 3분의 1이 넘는 지역구의 당락은 결국 수백 표에서 수천 표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정부여당의 지난 2년간 국정운영이나 야당의 일방적 입법 행태 평가와 거의 무관한 것이었다. 결국 이런 아주 적은 표차로 당락이 결정된 주원인은 지난 3월 이후 발생한 돌발변수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그 시기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행한 몇 가지 일이 여당 패배에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은 사람이 늘 한계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즉, 사람은 순간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선택한다. 이런 사람은 과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대개 지금 당장 유리한 걸 택한다. 당연히 투표에서도 이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난 2년 국정 수행 행태와 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심판적 투표는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에 경도되거나 지역적으로 영·호남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중요 의사결정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데올로기적 성향이나 거주지역 배경 유권자들의 투표는 선거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적 변화는 없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데올로기와 지역이 상수가 되면 남은 것은 스윙보터들이다. 대개 이들은 선거에 임박해서 이슈에 따라 누구에 투표할 것인가를 정한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와 지역구도 등이 상수가 되면, 이들의 투표가 당락을 결정한다. 많은 지역 선거구가 수백 표 내지 수천 표로 당락이 결정된 이유의 핵심 중 하나가 이것이다. 최근 선거 결과들은 이 성향을 반복하고 있다. 당연히 소선거구제와 맞물려 사표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선거 결과는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이해관계가 크게 세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 결과가 사람들의 도덕성 실종에 기인한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이는 공동체가 추구할 공통의 가치가 와해되면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기존의 가치체계와 이해관계의 기준(norm)이 제 역할을 못함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평화(social peace)’를 지키려면 가급적 이 다원화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게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 투표로 선출된 우리의 대표자들(representatives)은 선출되자마자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타도 대상이 된다. 이는 정치가 공동체 내 이해관계 조정을 통한 사회평화 유지라는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어렵게 하며, 선거를 포함한 정치과정에 다양한 추가적 갈등을 초래해서 나라와 사회에 혼란과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보수든 진보든, 영남이든 호남이든, 상대방 진영 소속 정당 후보자들이 자신의 대표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언론과 SNS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방과 험구들이다. 결국 민주적 절차에 의한 선거가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과 의무를 합리적으로 부담하게 할 것이라는 소망과 달리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치와 이해관계의 변화를 담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진보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급적 사표가 방지될 수 있는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 정치제도는 5년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과 양당이 국회에서 다수가 되는 양태다. 이는 정당의 난립과 빈번한 행정부 수반의 교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을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미 본 것처럼 전체 구성원이 견지하는 공통 가치에 대한 동의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현 제도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선거에서의 득표에 따라 합종연횡하여 행정부를 구성하고,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책임을 지는 다당제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이 경우 사표 방지와 여러 정당의 국회 진출을 위해서 중·대선거구제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런 변화는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가 국민의 삶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 타개를 위해 제도를 변경하는 것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헌법 개정 이후 정치제도 변화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한 정파나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고, 모든 정파가 난국 타개를 위한 바람직한 제도적 지향점을 진정으로 모색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새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비롯한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고 국민을 설득해서 새로운 제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