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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선 May 20. 2024

감사! 행복의 첫걸음

데일리 임팩트 <세상 돌아보기> 칼럼(2024.5.20)

5월이 되자 잎새들이 연둣빛 신록에서 초록빛 청록으로 바뀌어 간다. 나무들이 모두 멋지게 차려입은 처녀들처럼 그 자태를 뽐낸다. 이양하 교수의 ‘신록예찬’이 새삼 기억났다. 이 글을 처음 읽은 고등학교 시절, 그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인식 및 공감 능력은 내게 없었다. 그러나 70이 다 된 지금 아침에 책가방을 끌고 나서다 초록으로 가득 찬 뜰과 거리와 공원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감을 감사하게 된다.


이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신록예찬’을 다시 읽고 격하게 공감했다. 필자의 마음이 내게도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글·음악·그림 등은 영원성을 가지나 보다. 다들 읽어 보셨겠으나 공감이 컸던 몇 구절을 함께 음미하실 수 있게 여기 옮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중략)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 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는 흉중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이 잎새로 무성한 5월은 감사의 달이기도 하다. 며칠 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이제 손주를 볼 나이이나 아직 아들들이 손주들을 데려오지 않고 있으니 어린이날은 내가 축하하지 못한다. 그러나 연로하셔서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께는 여전히 “아이”로 감사할 수 있다.


달포 전 어머니가 고관절을 다치셔서 거동을 못 하시게 되었다. 집에서 자식들이 돌봐드릴 수 없어 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런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신 채 면회실로 내려오셨다. 그 어려운 가운데도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 얼굴은 내가 여러 피에타 그림과 조각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이다. 그 검버섯 피고 주름진 얼굴, 얼룩진 주름으로 덮인 손등은 내게 감사의 조건이고 거룩함의 다른 모습이다.


그 어려웠던 일제 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넘어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하신 어머니의 일생이 내가 믿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지금 나는 손수 수족을 움직여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서러움이 가득하나, 어머니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이 걱정할까 봐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 이런 어머니를 가진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내게 조건 없는 선물로 부모님이 계셨음을 알기에 이를 “은혜”라 부를 수밖에 없다.


과거 스승의 날 즈음에는 중학교 은사 한 분, 고등학교 은사 한 분, 대학교 은사 한 분께 날짜를 잡아서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돌아가셔서 뵐 수가 없다. 사실 변변하게 공부한 사람이 없는 우리 집안에서 내가 오늘처럼 공부해서 밥 먹는 사람이 되게 하신 많은 공로는 좋은 선생님들께 돌려야 한다. 지금도 선생님들이 그러시겠지만, 과거 내 은사님들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부모님처럼 길잡이 해 주셨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나를 수시로 집에 데려다 밥을 먹이셨다. 다른 아이들보다 가난했던 우리 집 형편을 생각하셨으리라. 중학교 선생님 한 분은 생선장사를 해서 비린내 나는 누추한 우리 집에 오셔서 아버지께 늘 내 자랑을 하셨다. 성적이 떨어지면 떨어졌다고, 올라가면 올라갔다고 집에 오셔서 반찬도 없는 밥을 식구들과 함께 드시면서 격려를 하셨다.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과외비가 없는 내게 영어 과외를 무료로 시켜 주셨다. 대학교 은사 한 분은 외국에서 박사를 할 때는 물론 직장에 있는 동안에도 살피시고 나를 자랑하셨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되돌아보면 이분들뿐만 아니라 나를 가르쳐 주신 모든 선생님들이 내 오늘이 있게 하신 부모님이시다.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늘 마음에 있다.


어디 이뿐이랴. 내가 성경에서 가장 이해가 힘든 부분은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8).”이다.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게 가능한가? 이게 내 신앙에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였다. 지금도 여전히 모든 일에 감사할 만한 신앙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릴 적 가난해서 많은 집에서 겨울에는 점심을 걸렀던 이 나라가 번영하는 나라가 되고, 한국전쟁 이후 무려 70년이 넘는 세월을 평화 속에서 살았다. 약육강식과 무법천지였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모든 사람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가 되었다. 이 번영과 평화와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습을 본 세대로 이 나라에 살았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제 점점 늙어가는 여생에도 내 일상을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살 수 있고,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을 한 치의 두려움 없이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오늘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제는 내가 밥 짓지 않아도 굶을 일이 없고, 내가 옷을 만들지 않아도 헐벗을 일이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남들이 최선을 다해서 공급하고, 나는 내가 잘하는 것만 해도 이 모든 게 해결된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데 바로 이에 감사하는 게 범사에 감사하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이렇게 자연과 사람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바로 행복의 첫걸음임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를 깨달으면 행복해진다. 자연과 사람과 일상에 감사하면 부족함이 없어진다. 범사에 감사하면 당연히 신앙이 행복이 된다. 그러니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감사하는 데 마음을 두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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