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사실 2021년을 회고할 생각은 없었다.
나에 대해 실망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돌이켜보면 뜻깊은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최근 과거를 돌아보는 습관을 고치리라 마음먹었기도 했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년이라고 모든 게 리셋되지 않는다. 1월 1일은 또 다른 하루이고 하루는 어제와 연결되어 있다. 회고가 없으면 새로움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1년을 돌이켜보았다.
'1년 동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첫 번째, 직업 변경
직업을 바꿨다. 전혀 몰랐던 완전 다른 분야로.
나는 요상한 직업루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직업이 가장 요상하다.
디자인 전공 > 디자이너 > 갑자기 방송국 프로듀서 > 갑자기 백수 > (이것저것요것)프리랜서 > 갑자기 퍼포먼스 마케터 > 다음은??
2021년은 퍼포먼스 마케터로 본격 직업 변경을 한 첫 해다. 전공수업을 출튀하고 광고 마케팅 동아리에서 밤을 새우고, 아무도 안 듣는 디자인 비즈니스 수업을 들을 만큼(내가 들은 다음 해 폐강되었다.) '디자인을 어떻게 팔아 낼 것인가'에 관심은 많았지만, 광고 에이전시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생각보다 일은 재밌었다. 새로운 직무를 배우는 건 짜릿했다.
크리에이티브가 절대적인 콘텐츠 업과 디자인 업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소수의 아이디어만 성공한다. 하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은 아이디어보다는 통합적인 관점이 더 중요하다. 어떤 매체에서 얼마를 가지고 어떤 타깃에게 어떤 광고를 보여주겠는가 등의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직무다. 항상 정량적으로 소통하고 데이터를 뒷받침하여 액션을 취해야 한다.
1년 동안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정말 출근하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사수 없는 환경에서 혼자 끙끙대며 매체에 대해 공부하고, 지독한 광고주를 만나 주눅 들기도 했다.
하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으로의 직업 전환은, 만족도를 떠나서 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먼저 삶을 좀 더 체계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프로듀서나 디자이너 생활을 할 땐 '느낌'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구체적인 근거, 기회비용을 고려하며 선택한다.
그리고 나를 믿게 되었다. 앞선 이유의 연장선으로, 합리적인 사고로 나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다. 즉, 근거와 기회비용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물론 느낌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땐 feel 충만한 또 다른 내가 튀어나온다.
2020년도의 나는 전혀 생각도 못할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점. 내가 잘 다니던 기업을 그만두고 도전하지 않았으면 겪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자 자그마한 성취다.
두 번째, 창업 준비
아- 내가 창업이라니! 살면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물론 내가 만든 작고 소중한 것들을 팔아봐야지 하고 사부작 거리며 주얼리 몇 개와 마우스패드 몇 장 정도는 팔아봤지만 그게 다였다. 그런데 직업을 변경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료 중에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꿈인 디자이너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일단 디자인은 할 줄은 알았고, 제품을 마케팅할 수 있으니 Why Not? 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업으로 삼아보고 싶었다. 나는 항상 고민이었던 '내가 하고 싶은 건 도대체 뭘까'의 답을 직업에서 찾으려 했고 그러자 정말 답이 안 나왔다. 관심 있던 직업, 직무들은 있었지만 과연 내가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마도 모든 직업에 80% 이상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하나 더 가지자! 에서 시작한 것이 창업 준비다.
'투잡 쓰리잡도 해본 내가 창업은 왜 못해!' 하며 근자감으로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삐그덕거리는 창업 초보다.
세 번째, 시간을 자산으로 생각하기
책 읽기를 참 좋아했었던 어릴 적과 달리, 어른이 되어서는 읽는 행위가 너무 피곤했다. 특히 직장을 옮기면서 도합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에 녹초가 되곤 했고 주말엔 책보단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꼭 붙어있었다. 프로듀서로 일할 때는 영상을 보는 게 일이어서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내가 바보 같다고 느꼈다.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는 많은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은 쉴 때 선택적으로 책을 읽었다.
나는 게으르지만 항상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큰 사람이라,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기준 똑똑한 사람들이 읽는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다양한 책들을 읽었지만 대부분 자기계발서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자기계발서가 뭐였더라?'
문득 나는 자기계발서를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뻔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찬찬히 '좋은' 자기계발서를 보니, 책을 읽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이제 것 재미를 위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에서 무엇인가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을 못했다.
나는 나에게 도움이 될 책을 찾고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읽었다. 피곤하면 밀리의 서재의 오디오북을 이용했다. 하루에 3시간은 정말 큰 시간이다. 8시간을 취침시간이라고 했을 때 16시간 중 3시간은 거의 1/5에 가까운 시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시간을 아직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제 시간을 내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핸드폰과 멀어지고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의 2021년 변화중 하나다.
생각보다 나는 많은 것을 성취했고 변화했고 더 나아졌다.
하루하루는 뭐하나 바뀌는 게 없어서 무의미하고 지겹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1년 단위로 본 나는 놀랍도록 변해있었다. 2020의 나와 비교했을 때 나는 더 나다웠다. 이곳저곳 부딪혔지만 울면서 포기하기보단 돌아 돌아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고 나아가고 있다.
2022년의 나의 목표는 잘 살기이다.
잘 살기 위해 나는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도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를 것이다.
내가 어떤 일에 두근거리는지 잘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다 보면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