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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말만 들어서는 절대 모를, 각자의 사정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by 수풀림

"OO회사 제품은 앞으로 절대 구매하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 한 고객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우리 회사가 자신을 빚쟁이 취급했다며 화를 가득 담아 적어 내려간 글이었다. 다시는 이런 회사와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문제는, 그분이 꽤 영향력이 있는 커뮤니티 인플루언서였다는 점이다. 포스팅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뭐 그런 회사가 다 있냐’, ‘나도 불매하겠다’는 반응 등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그 글을 퍼다 나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팀에도 이 소식이 들려왔고, 상황 수습을 위해 빠르게 내부 담당자들을 찾아갔다. 글 내용으로 짐작컨데, 우리 회사 직원이 말 실수를 해서 고객이 화가 난 상황 같았다. 혹은 그런 의도로 얘기한 건 아닌데, 고객이 오해해 생긴 일이라 생각했다.


"하...저희도 참 억울하네요."

내가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자, 거래처 담당자가 울분을 토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고객이 지난 6개월 동안 구매했던 제품에 대한 대금을 계속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추가로 고가 장비를 외상으로 구매하겠다고 요구했고, 담당자는 내부 규정상 어렵다는 점을 안내드렸다고 했다.

"아니, 투자금만 들어오면 돈 준다고. 두 달 후에 다 갚겠다는데, 당신들 뭐야! 나 무시하는거야?"

그야말로 JS, 진상 고객의 전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는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며 일정 대금 후 추가 구매 방법까지 말씀드렸다고 한다. 사실 투자금이 언제 들어올지 불투명했지만,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잃지 않으려 회계팀을 찾아가 다른 방법도 알아봤단다.

하지만 고객은 자신이 거절당했단 사실 자체에 분개하며, 결국 SNS에 포스팅을 한 것이다. 선후관계, 자세한 배경 설명은 쏙 뺀 채,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 사건을 겪으며, 한 가지 깨달았다.

한쪽 말만 듣고서 절대 전체를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과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일도 누군가에게는 억울함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답답함으로 남게 마련이다.

며칠 전 있었던 두 부서와의 회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A 부서와 B 부서가 협업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내가 중간 조율자로 회의에 참석했다. 먼저 A 부서와의 단독 미팅 시간. A 부서 담당자는 B 부서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아니, 우리 팀이 시간 들여서 B 부서 제품 공짜로 테스트 해주고, 리포트까지 써준다는데, 그걸 왜 거절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주도권 뺏길까봐 그러나?"

A 부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조차도 B 부서가 이해되지 않았다. B 부서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B 부서 데모 장비를 A 부서에 넘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B 부서와의 미팅에서, 그들의 입장을 듣고 그제야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실은 저희 장비가 문제가 많아요. 수리하는 데만 두 달이 걸리는데, 그 이후에도 같은 이슈가 생길 수도 있대요. A 부서한테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서 사실대로 말을 못 꺼냈어요.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과는 달리, 그 뒤에 숨어 있는 이유와 맥락은 남들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잘라낸 장면’에 가깝다. 괜히 방송에서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오해들 역시 대부분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쪽 이야기를 먼저 들으면 마음이 쉽사리 기울고, 그 순간 상대편의 입장은 이미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누군가는 억울하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또 누군가는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면, 저마다의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될 만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 대신, 경청의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단 들어봐야 한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명백한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아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듣는 게 회사 생활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판단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이해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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