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 직장인의 소울 푸드

매일 먹어도 안 질리는 점심 메뉴?

by 수풀림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직장인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점심 시간. 오늘도 서로 눈치를 보며 메뉴 탐색을 한다. 업무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협상하는 순간이다. 누구는 면은 안 땡긴다고 하고, 누구는 어제 쭈꾸미 볶음을 먹어 그 메뉴만 빼면 다 괜찮다 한다. 이것저것 안되는 거 다 빼고 나니, 남는 게 별로 없다. 그 때 누군가 외친다.

"그냥 제육볶음 먹으러 갈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회사 근처 제육볶음 잘 하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언의 동의다. 뭔가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었던 나는 차마 입 밖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또 제육볶음이야? 엊그제에도 먹었던 거 같은데, 질리지도 않나?'


직장인에게 제육 볶음이란 어떤 음식인가.

한마디로 '실패 없는 선택지'이자, '소울푸드'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는 돼지고기에, 매콤달콤 양념을 입혀 센 불에 볶아 냈으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제육덮밥으로 먹어도 맛나고, 각종 반찬과 곁들여 먹어도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고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제육볶음과 상추쌈의 조합이면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우곤 한다. 어느 식당을 가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이 보장되는 메뉴이자, 월급쟁이의 지갑사정까지 고려한 착한 가격대를 자랑한다.

제육볶음에 특히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남성 팬들이 많아, 한번은 남성 동료들 및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진짜로, 제육볶음은 매일 먹어도 안 질려?"

그들의 대답은 예상대로 대부분 'YES'. 확신을 넘어,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바보같이 질문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들조차도 왜 제육볶음이 소울푸드인지는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물론 직장인의 소울푸드가 제육볶음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아침, 점심, 오후 주구장창 달고 사는 아메리카노는 어떤가. 직장인의 혈액 90%는 아메리카노로 이뤄졌다는 농담은, 어쩌면 괴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음식에 찌들어 있다가 만나는, 집밥 같은 백반은 또 얼마나 반갑고! 엄마가 해준 것 같은 따뜻한 밥과 소박한 반찬을 먹고 있으면,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남성 직장인들에게 제육볶음이 있다면, 여성 직장인들에게는 떡볶이를 빼놓을 수 없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이 매콤하고 쫄깃쫄깃한 음식으로 한 방에 날려 버린다. 먹고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단다. 오죽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이 있을까 싶다.

회사에서 100명이 넘는 동료를 대상으로 회사 행사 때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부동의 1위는 제육볶음, 2위는 떡볶이였다. 하나의 음식만 고를 수 있어 제육볶음으로 결정했다가, 떡볶이 팬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결국, 오후 간식으로 떡볶이를 제공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지만.


생각해보니, 직장인들의 소울 푸드로 꼽는 음식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함'. 제육볶음이나 떡볶이, 아메리카노 등은 참 오래된 메뉴이자, 주변에서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음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우리를 스쳐갔던 각종 화려하고 다양한 메뉴들 사이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음식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그런 모습이, 평범한 직장인들의 모습과도 닮아있지 않을까 싶다. 잘 나가는 옆 자리 김차장을 부러워하다가도,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났음에 감사하며 버텨내는 우리들 말이다.

화려한 메뉴들은 잠깐의 유행을 누리다가 금방 사라지지만, 이런 소울 푸드들은 매일의 삶에 잔잔하게 스며 있다. 크게 티나지는 않지만, 우리를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아마 그래서 직장인들은 이 클래식하고 평범한 메뉴를, 이상하리만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음식들 덕분에, 우리는 직장인으로서 펼쳐지는 하루를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일지도.


#직장인 #점심 #소울푸드 #제육볶음 #떡볶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표 낸 직원의 마음을 돌린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