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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Nov 05. 2024

같은 경험을 나눈 사이

우리의 추억은 오래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각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추억은 가장 강력한 후보가 아닐까. 주말 우리 집 식탁에서 제일 공감을 사며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주제도 역시 '같은 경험'이다. 각자의 경험을 나눌 때는 흥미롭게 듣다가도 '그렇구나'로 금세 끝나는 반면, 우리가 다 같이 함께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너무나도 신나게 침을 튀기며 말을 이어가게 된다. 작년 가을 무렵 집 근처 나지막한 산에 갔다가 길을 잃을뻔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다. 가족과는 웬만해서는 같이 외출을 하지 않으려는 사춘기 딸을 간신히 꼬셔 산을 오를 때였다. 남편의 주체할 수 없는 외출에 대한 열정과, 나와 딸의 저질 체력은 늘 상충했다. 그는 이왕 산에 왔으면 꼭대기까지 가자고 말했고, 이미 초반 오르막길에 지친 나머지 사람들은 온몸으로 이를 거부했다. 어떻게든 우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은 남편은, 맛있는 음식으로 살살 꼬드겼다. 연어초밥이었는지 혹은 감자탕이었는지 메뉴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우리는 걷고 또 걸었지만 도대체 정상은 어디인지 가늠도 안되었고, 너무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중도 포기를 외쳤고, 남편은 그제야 알았다고 하며 멈추었다. 

빨리 하산하고 싶어 왔던 길로 몸을 돌렸지만, 그는 자신만 믿으라며, 더 빨리 내려가는 지름길을 안다고 했다. 나와 딸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남편을 쳐다봤다. 그놈의 지름길 타령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살 무렵 뾰족구두를 신고 데이트를 할 때도, 그는 이 길이 빠르다며 나를 이상한 산길로 안내한 적이 있다. 걸어도 걸어도 큰길은 나오지 않았고, 흙길을 하이힐로 걷다가 결국 구두굽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울며 그를 원망하다가, 결국 얼마간은 업혀서 내려온 것 같다. 

아무튼 큰소리 떵떵 치는 남편에게 이번 한 번만 더 속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길치라 왔던 길 말고는 다른 길을 모르기도 했고,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라? 그러면 그렇지. 가도 가도 여기가 어딘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데자뷔도 아니고, 점점 더 산속 미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딸도 '아빠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다리는 천근만근, 머릿속은 의심 가득. GPS를 켜봤지만, 결국 걸어서 이 길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맞닥뜨렸다. 다행히도 걷다 보니 주차장이 나왔다. 그날의 경험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우리 집 식탁에 오른다. 남편의 '이제 다 왔어'라는 말에 대한 불신과, 가족들의 불평은 재미난 안주거리다. 우리 가족만이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랄까.


이런 '같은 경험'에 대한 추억은 비단 가족 구성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한참 묻다가도, 결국 마지막에 가장 즐겁게 하는 이야기는 바로 '같은 경험'이다. 특히나 대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궁금한 이야기들이 많다. 몇 년 전 출산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 그 아이는 몇 살인지, 힘겹게 워킹맘을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등등. 그러다가도 누군가 추억 버튼을 누르면, 그 순간 우리는 같은 경험을 나누었던 20살 무렵으로 함께 되돌아간다. 기말고사 전날 술을 퍼먹고 시험에 못 들어가 다 같이 F학점을 사이좋게 맞았던 기억, 누군가의 고백 현장에 참석해 설레었던 추억 등등을 얘기한다. 신입생 시절 농활에 가서 선배들 몰래 담배를 나누어 피며 콜록댔던 우리의 첫 흡연 경험도, 단골 회상 멘트 중 하나이다. 체력은 전만 못해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때 같이 나누었던 우리의 술잔만큼은 또렷이 추억한다. 그리고 같이 했던 그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각별한 사이라고 느낀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색한 회식 자리에서 단골 안주는 바로 '회사 워크숍' 이야기일 것이다. 다 같이 갔던 워크숍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와 밤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동료와, 그와 함께하며 다 같이 옛날 유행가를 부르던 기억. 집에서 가져온 비싼 위스키 한 병이 금세 떨어지자, 위스키 병에 소주를 타 '발렌타인' 대신 '소렌타인'이라고 이름 붙이며 마시라고 했던 기억. 평소에는 표정 없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부장님이 만취해, 누군가에게 실려가며 주정을 했던 이야기 등등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가 다 같이 경험했던 기억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함께한 사이이기에, 조금 더 끈끈하다고 느낀다. 없던 동료애가 마구마구 샘솟으며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같은 경험을 나눈 사이는, 각별하다.

그 시간과 공간에, 나와 그 순간 함께한 사람이 함께 나눈 경험이라 그렇다. 경험을 나누면 추억이 되고, 추억을 회상하는 동안 친밀감이 샘솟는다. 동질감이 느껴지고, 말하지 않아도 공감이 팍팍 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는가,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경험이라고. 더군다나 여기에 '같이 한 경험'이라면 더 특별하지 않겠는가. 함께한 경험만큼, 함께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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