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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 오래도록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내 글감 어디 갔어!

by 수풀림 Feb 20. 2025

지난 일 년 동안 글을 쓰며, 늘 '영감'님이 제 곁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왔어요. 

에헴~하시는 백발의 영감님 말고, 글감이 될만한 반짝이는 아이디어 말이에요. 글 쓰시는 분들은 매일이 고민이잖아요. 오늘 하루는 도대체 뭘 쓸까 하고 말에요. 도무지 쓸 말이 없어 쥐어짤 때도 있어요. 어쩌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막 적다 보면, 어제 했던 얘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다른 작가님들 글을 보면서, 어떻게 기발하고 창의적일 수 있을까 부러워하기도 하잖아요. 도대체 영감님은 이제 오시려나, 저제 오시려나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속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잠시 신내림이 온 것처럼 '이걸 써봐야겠다'라는 게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과 상황이, 모두 좋은 글감이었어요. 매번 하던 회의지만, '글감' 레이더가 발동하니 오늘 회의를 어떻게 글로 녹일까 하며 저절로 머리가 굴러갔죠. 마치 이런 식이에요. 

"전무님, 저희 팀 이번 분기 매출 도저히 못 채우겠습니다."

언젠가 참석했던 팀장 회의에서, 영업팀장님이 용감하게 발언했어요. 그 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무님은 당연히 '꾸짖을 갈'자를 외쳤고요. 하지만 팀장님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억울함을 호소했죠. 지난 분기에 초과달성 해서, 이번 분기는 안되는 걸 왜 모르시냐면서요. 다행히 매출 압박이 덜 한 제가 그걸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생각하죠. 회사 일 말고, 글감 생각을요. '회의에서 상사 기분 거스르지 않으면서, 내 할 말 하는 법', '팀장님, 눈치 좀 봐가면서 말해요', '슬기로운 회의생활' 등등 혼자 제목을 지어봐요.

아무튼 이런 글감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부지런히 적어 놨어요. 제 기억력을 절대 믿지 않으니까, 어디라도 남겨 놔야 해요. 하지만 책상에 앉아 각 잡고 글을 쓰려고 하면, 막막하더라고요. 글감이 날아가 버릴까 찰나에 빨리 적느냐, 나중에 읽어보면 개발새발이에요. 단어가 띄엄띄엄, 그때 뭘 쓰려고 했었지? 싶어요. 운 좋게 그 순간이 생각나 살을 붙여 써보려고 해도, 살이 너무 많이 불어나 감당이 안 될 때도 많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감님이 찾아오신 그 순간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짧게, 조금씩 써보려고 합니다. 메모장에서 누워 잠자고 있는 글감들을, 봄의 기운으로 깨워 보려고요. 별 거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로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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