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샘솟는, 당신만의 장소가 있나요?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카페에 간다는거야?"
남편에게 종종 듣는 잔소리 중 하나에요. 가끔씩 재택근무를 하는 평일에도, 노는 주말에도,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주제에도, 카페 출근도장은 꼭 찍는 편이거든요. 일에 집중을 못하겠다, 글쓰기가 잘 안된다고 말해보지만, 남편은 절대 이해 못해요. 집에 커피머신, 책상, 의자, 모니터 다 있고, 심지어 다들 외출해서 아무도 없는데 왜 집중을 못하냐고 반문하죠. 카페가 그저 커피의 공급원이거나,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요. 그는 저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에요. 머나먼 깐따삐아 별에서 와서, 아직 잘 모르겠죠. 카페가 나에게 어떤 공간인지 말이에요. 어차피 더 설명해봤자 입만 아프니, 그냥 가방을 싸들고 집에서 나와요. 차에 시동을 걸고, 단골 에스프레소 바로 향해요.
집앞에 갈 수 있는 카페가 많지만, 굳이 운전까지 해서 그곳에 찾아가죠.
시간이 아깝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저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거든요. 드디어 도착하면 작은 설렘이 시작되요. 익숙한 간판이 보이고, 문을 열면 향긋한 커피 향기가 먼저 저를 반겨주죠. 공간을 꽉 채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엔돌핀과 도파민이 혈관을 따라 흘러요. 작게 콩콩 뛰는, 기분좋은 심장 박동도 느껴지고요. 아직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그날 기분에 따라 끌리는 커피를 고르고 자리를 잡아 봅니다. 워낙 좁은 공간에, 스탠딩 테이블 뿐이라 앉을 자리가 없지만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맛있는 커피가 나올테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 저는 이탈리아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이 들테니까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음미해요. 매번 오는 카페지만, 주변을 쓱 둘러봅니다. 이탈리아말로 써있는 체리 시럽병도 보이고,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도 보여요. 여기가 이탈리아라고 스스로 세뇌를 하면서 커피를 마시면, 진짜 나는 피렌체의 카페에 와있는 기분이에요. 어차피 상상은 자유고, 그 덤은 즐거움이니까요.
그렇게 기분이 자연스레 좋아지면, 신기하게도 평소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떠올라요.
커피 한 모금이 들어가니 그런걸까요, 아니면 상상 여행을 해서 그런걸까요. 저도 잘 모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쓸 일이 없어 쿨쿨 잠자던 뇌세포 뉴런들이, 간만에 깨어나는 느낌을 즐기면 되죠. 뭐 대단한 생각은 아니지만, 나름의 아하 모먼트랄까요. 작고 소소하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대략 이런 의식의 흐름이에요.
'어제 A가 내 다이어리에 대해 궁금해하던데, 이걸 글로 써볼까. 이게 글이 되려나? 아니지, 벌써 A 말고도 물어본 사람 몇 명 더 있잖아. 맞다! 얘기해보니 다이어리랑 같이 쓰는 펜도 탐내는 것 같던데, 그것도 한번 써봐?'
이렇게 생각이 나면, 노트북을 켜고 하얀 화면에 아무 말이나 써봅니다. 글감은, 영감은, 기록해놓지 않으면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그 순간 쓰는게 참 중요하더라구요. 쓰면서 또 느껴요. 쓰다보니, 할말이 왜이리 많지. 이렇게 내가 수다쟁이였나. 외계인인 남편이 간과한 카페의 또 하나의 가치는, 저에게는 바로 '영감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생각들이, 여기만 오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자기들끼리 날뛰어요.
아르키메데스가 괜히 목욕을 하다가 유레카를 외친게 아니겠더라구요.
만약 그가 실험실에만, 책상 앞에만 처박혀 있었다면 과연 그는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을까요. 또 다른 공간에서, 평소와 다른 자극을 받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목욕탕 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존의 나의 고민과 연결시켰더니 나온 통찰이겠죠. 물론, 목욕탕 안에서만 유레카를 외치라는 법은 없죠. 영감을 주는 그 공간이 저에게는 카페이고, 다른 분들에게는 자주 산책하는 집 근처 공원일 수도 있어요. 가끔은 시공간을 초월해 출퇴근 버스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깨지는 순간에도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죠.
아무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영감의 장소'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네요. 혹은 있어도 나만 알고 싶어, 꽁꽁 숨겨둔 비밀 공간인지도요. 독자분들의 톰소여 트리 하우스를 엿보고 싶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