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회사에 내 자리를 갖게 된다는 건, 사회 초년생에게는 큰 의미가 있죠.
드디어 사회인으로서 한몫하며, 근로소득을 창출하고 회사에도 기여한다는 뜻이니까요. 2007년 봄, 대학원을 탈출하듯 빠져나와 취직을 했을 때가 생각나요. 첫 출근을 했더니, 여기 앉으면 된다고 책상을 안내해 주더라고요. 두근두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었던 것 같네요. 어리바리하게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부터 가장 열심히 공을 들였던 게 있어요. 바로, 상사에게 인사하기도, 업무 빨리 익히기도 아닌, 책상 꾸미기였어요. 회사에 내 공간이 생긴 게 신기하고 즐거워, 얼른 내 물건으로 채우고 싶었죠. 칫솔, 치약 같은 필수품부터 좋은 향이 나는 방향제까지. 첫 직장에서 보낸 5년의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제 책상을 거쳐갔어요. 마케팅이 업이라, 여기저기서 받아온 브로셔나 프린트된 문서들이 한가득 쌓여 있는 건 기본이었어요. 회사에서 매달 2-3권씩 나눠주면서 독후감 숙제까지 해야 하는 책도, 늘 책상 위에 있었고요.
제 책상은, 직장인들의 도토리 창고 역할도 했어요. 이 부서 저 부서 많이 만나서 얘기해야 풀리는 일을 하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죠. 사람들은 먹을 것 앞에서 온순해진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 후부터는 책상 위에 작은 간식 바구니를 올려놓았어요. 팀원과 대화할 때도 과자나 초콜릿은 훌륭한 매개체가 되어주더라고요. 간식뿐만 아니라 제 책상 위는 이것저것 없는 물건 없이, 마치 잡화점처럼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옆자리 김 과장 자리에 있는 피규어가 탐나, 저도 슬쩍 따라 사봤어요. 누가 좋다고 추천했던 손목 받침대, 깔롱 한 마우스 등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한 때 유행이었던 캐릭터 문구류들 또한 제 책상을 늘 거쳐가는 단골손님이었죠. 게다가 그 당시에도 멘털 관리를 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 앞 가게에서 꽃을 사서 꽂아 놓았어요. 예쁜 유리병에, 계절의 생생함이 느껴지는 5천 원어치 꽃들로 눈도 호강하고 힐링도 했답니다. 나중에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자리에 꽃을 꽂아 놓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되었죠. 채 100cm도 되지 않는 제 책상 위에는, 컴퓨터부터 간식까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헐, 그 소식 들었어? 다음 달부터 모바일 오피스인가 뭔가로 바꾼대!"
첫 직장 이후 3-4번의 이직을 거쳐 다니고 있는 지금 회사에서, 동료로부터 갑자기 이런 소식을 들었어요. 외국계로 이직한 전 직장 친구들이, 가끔씩 모바일 오피스 얘기는 해줘서 알고는 있었거든요. 도서관처럼 메뚜기 생활을 해야 되고, 내 물건은 매일같이 사물함에 넣고 다녀야 한다고. 무지 불편한데 누구 좋자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갖은 불만을 터뜨렸던 소재였죠. 위워크 같은 공용 오피스가 이제 막 유행이 될 시기였고, 외국에서는 모바일 오피스가 보편화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러든 말든 남의 나라 얘기였는데, 내 코앞에 닥칠 줄은 몰랐어요. 도대체 회사는 비용을 얼마나 아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사장에 대한 원망이 앞섰죠.
아니나 다를까, 시행 첫날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어요. 특히나 나이 많은 임원분들은, 갈 곳을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잠시 서계시더라고요. 마치 '내 자리를 누가 뺏어갔냐?'라고 눈으로 욕하는 것 같았어요. 실은 저도 무지 싫었어요. 이직을 해서도, 잡화점 스타일 책상 꾸미기는 버리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물건이 매일 증식했죠. 시즌마다 나오는 신상 문구들로 채워진 나만의 책상을, 한순간에 다 포기하라니요! 이걸 언제 다 치우나 막막하기만 했어요.
마치 이사를 앞둔 사람처럼, 그때부터 버리기와 비우기 전쟁에 들어갔죠.
3년간 보물처럼 간직한, 전임자의 인수인계 문서들. 경쟁사 세미나에 몰래 들어가 훔치듯 가져온 홍보 자료. 최신 유행 자기 계발서들. 캐릭터 피규어와 작은 화분들과 큼지막한 달력 등등. 아까워서 쉽사리 휴지통에 못 넣겠더라고요. 심지어 당시 살 딸내미가 그려준 정체 모를 그림과 가족사진까지 책상 벽에 잔뜩 붙어 있었거든요. 부피가 큰 종이들은 재활용함에 넣고, 간직해야 할 것들은 박스에 싸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마치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아이템은?'이라는 질문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손바닥만 한 개인 사물함에 들어가면서도,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필수 아이템들을 골라야 했거든요. 방향제나 꽃, 이런 건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책상에서 무엇을 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죠.
여러분께 제 옛날 책상의 모습과, 지금 책상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 드리고 싶네요.
그야말로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의 대 전환이었달까요. 내가 의도한 적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최소화'된 오피스 라이프를 살고 있어요. 인쇄된 문서들은 모조리 디지털 파일로 저장하고, 사무용품은 필요할 때마다 공용 물품들을 쓰고 있죠. 내 자리와 공간이 사라지니, 물건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도 조금씩 사그라들더라고요. 책상 꾸미기에 그렇게 열정과 애정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요.
이 브런치북을 통해, 여러 가지 사무실 필수품들을 소개해 드렸어요. 하지만 '빼기'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결국 회사에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더라고요. 바로 '업무용 노트북'.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노트북이야 말로 디지털 노매드 생활의 필수품이자, only ONE이죠. 마우스, 키보드, 노트, 펜, 이런 건 모두 다 옵션이에요. 책상 위에 수없이 놓인 물건들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 줄 알았어요. 모두 다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었죠. 이제는 없이 살다 보니 알겠어요. 왜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지.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잖아요.
나만의 개성 있는 데스크테리어를 시작해 보시라고 외친 저마저도, 간결한 삶의 필요성을 점점 체감하고 있어요. 그 많던 물건들이 사라졌는데, 놀랍게도 아무 문제 없이 일할 수 있더라고요. 오히려 모바일 데스크의 장점까지 찾아냈을 정도예요.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사물들이 없으니, 조금 더 집중이 잘 되었어요. 머릿속도 가뜩이나 복잡한데, 책상마저 복잡하면 더 정신없거든요.
게다가 매일 책상을 싹 다 치우고 퇴근해야 해요. 내 자리가 아니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상 정리를 하는 거죠. 비울 때의 홀가분함을 느껴요. 다음 날 출근해서 아무것도 없는 빈 책상 앞에 앉으면, 리셋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매일 하다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아요. 마치 카페처럼, 새로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직장인 분들께 질문을 드리며 오늘 글을 마무리해 보아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것을 비우고 싶나요?"
이 질문은 결국, '오늘 하루 어떤 것에 가장 집중하고 싶은지'와 같은 의미예요. 채우기만 있었던 회사의 일과를 잠시 멈추고, '빼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직장인의 하루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