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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 Oct 12. 2022

완벽주의에 대하여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나는 자주 완벽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완벽이 아닌 ‘완벽주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쉽게 시도해보지 못한다. 행동보다 생각이 많다. 몸보다 머릿속이 바쁘다.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면서 이런 게으른 완벽주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수없이 배웠으면서도 몸보다는 머리가 앞선다. 완벽주의를 버리려고 자주 애쓰지만, 결국 나는 관성적으로 ‘잘하기 위해’ 멈춰서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고 만다.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놓고도 선뜻 글을 쓰지 못했던 나. 바쁘다는 것은 결국은 핑계임을 알고 있다. 글을 쓰려니 부담감부터 다가왔다. ‘일’에 대해, ‘발레’에 대해, ‘공간 관찰’, ‘경험기획’에 대해. ‘무엇’에 대해 써야 한다는 부담. 일단 모니터와 키보드에 앉을 결심보다는 ‘무슨 글을 쓸까’하고 생각하다가 ‘그건 조사가 너무 오래 걸려’ ‘내가 얼마나 안다고’ ‘내가 그런 글을 쓰는 건 좀 웃기겠다’ 같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들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만 남겼다.


글쓰기가 자신과의 싸움이자 괴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렇게까지 부담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역시나 ‘완벽주의’가 있었다. 그럴듯한 좋은 글, 내가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글을 번듯하게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는 욕심. 내가 쓰는 글도 다른 브런치 작가들 (정확히는 브런치로 책을 내거나 인터뷰를 한 작가들)처럼 번지르르했으면 좋겠다는 욕심. 다행히도 욕심과 게으른 완벽주의를 인식하는 순간, 그 순간이 완벽주의를 버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쓰기 전부터 부담이 되는 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과하게 애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편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어떤 글이 나오든 무슨 상관이야? 하는 마음으로.


IT회사의 PM으로 일하면서 내가 가장 뼈저리게 배운 교훈은 ‘완벽주의를 버려라’였다. 짧은 주기의 스프린트로 돌아가는 프로젝트와 단기간에 급변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장기 프로젝트는 늘 방향성이 바뀌기 마련이었다. 이곳은 늘 급하고 바쁘고 빠르다. 완벽한 기획서, 완벽한 정책, 완벽한 로드맵, 완벽한 방향성을 위해 뜸 들일 시간이 없다. 그 누구도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지런한 완벽주의자도 환영받지 못한다. 완벽은 추구할 가치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무엇이 완벽한지 확언하지 못한다. ‘완벽’이 무엇인지는 만들어봐야 알 수 있기에.


‘Done is better than perfect’란 말이 있다. 이  기능 저 기능 붙여서 더 ‘완벽해 보이는’ 모양으로 출시하면 좋겠지만, 그 사이에 시장 상황이 변할 수도 있고 회사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최소한’의 기능만으로 출시해야 한다. 그것이 ‘MVP(Minimum Viable Product)’라 불리는 모델이고, 조금 어설픈 모습이라도 핵심 기능만으로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검증을 해야 앞으로 어디에 더 집중할지, 어디에 ‘완벽’을 기할지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레쓴런(Lesson learned)라고 부른다. 레쓴런을 얻으면 달라질 수 있다. 레쓴런을 얻으면 우리가 ‘완벽’이라 말하는 것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성공한 서비스들은 대체로 삽질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에서 레쓴런을 얻은 서비스들이다. 사용자 반응이 없네? 왜 없지? 우리가 세운 가설이 틀린 것인가? 그럼 사용자는 어디에 반응하지? 반응하는 부분을 뾰족하게 살려볼까? 이런 질문들이 뫼븨우스의 띠처럼 꼬리의 꼬리를 물고 하나씩 시도하면서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최근 읽은 워린 버핏의 골드만삭스 연설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첫 시도는 가장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도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지, 고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 첫 술에 배부르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하물며 사람이 만든 서비스와 기업도 그런데. 애초에 인생에 정답이란 것, 완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나?


완벽해질 욕심을 내는 사람보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완벽에 더 가까워진다. 시도해보면 바꿀 점이 보이고, 전혀 다른 방향을 찾기도 하니까. 이제 완벽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자 한다. 어설퍼도, 부족해도, 바보 같은 모습이어도. ‘뭐 어때’하는 마음으로. 두려움과 완벽함은 내려놓고 몸을 움직이려 한다. 정답을 몰라도 부딪혀 보는 게 인생이다.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인 것 같다. 요즘 참 생각 없이 사네, 쓸 이야기가 없네, 했던 나의 내면은 이렇게 이야기가 가득했다.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돈한다. 어떤 생각은 버리기도 하고, 어떤 생각은 적절한 위치에 옮겨두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어낸다. 열린 창으로 기분 좋은 햇살이 들어온다. 나를 무기력의 늪에서 구해줄 사람은 결국 나다. 완벽해지는 일, 정답을 찾는 일에 몰두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넉넉하고 친절해지기를.



p.s. 혼자라면 결국 할 수 없었을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글쓰기 모임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 이 글도 다 써놓고 괜히 세상에 내기가 부끄러워 저장만 해놓다가.. 이러면 발전이 없겠다 싶어 '발행'을 누릅니다. 세상 밖으로 꺼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계속해서 꺼내고 더 나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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