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선순환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IT 회사에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팀웍이 중요하다. 성향도 성격도 직무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프로덕트를 설계하고 만들어 간다. 말은 간단하지만, 의견도 입장도 관점도 다른 사람들과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다.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기획자는 그 혼란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다. 하루 일과 중의 절반 이상이 회의의 연속이다. 회의를 함께 하는 멤버도 늘 다르다. 누구보다 커뮤니케이션의 최전방에 있는 사람이 프로덕트 매니저이다.
하루 종일 회의를 하고, 회의록 정리를 하면 퇴근 시간이다. 기획서를 수정하고, 티켓을 정리하면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후라서, 공유할 내용은 작성하여 슬랙 예약 메시지를 설정해둔다. 소통하고 정리하느라 기획서 작성이 늦은 시간으로 밀리는 일도 잦지만, 소통하는 것 자체도 나의 일이다. 이런 생활이 자주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첫 번째는 내가 혼자 일하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오늘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누군가 회사 생활에서 목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 회사에 들어온 후론 줄곧 그랬다. 성장과 성취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임에도 그런 것들은 항상 ‘좋은 동료가 되는 것’ 다음의 것이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혼자만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내가 이 회사에 다니지 않았어도 그게 목표가 되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회사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회사를 좋아한다. 너무 회사 덕후같나..?ㅠ)
그만큼 좋은 동료도 많고, 좋은 동료가 되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그런 문화를 만드는 것 중 하나가 1년에 2번 ‘우아한 인재상’ 수상자를 추천받고 시상하는 일인 것 같다. 상을 받은 사람은 명예의 전당 같은 우아한 인재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고, 매년 엄청난 상품을 받지만, 그렇게 떨어지는 콩고물(?)보다 동료들이 그 사람과 함께 일 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든든해한다는 사실이 부럽고 멋있다고 느꼈다. 우아한 인재상 수상자는 그를 추천하는 동료들의 추천사와 함께 발표된다. 추천사를 공개하는 방식은 매년 다르지만 (작년 송년회 때는 유명 랩의 킬링벌스를 개사해서 조직장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직접 딩고 라이브처럼 불렀닼ㅋㅋ) 그 안에는 항상 무해한 존중과 든든한 동료애가 담겨있었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해야 하고, 자기 것을 칼 같이 챙기고, 내게 주어지는 일 이상을 맡기면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MZ세대는 그런 걸 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MZ 세대인 내가 봤을 때 그게 답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적정 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같이 하는 일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날카로운 사람 곁에는 누구도 머물 수가 없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곳에서 배운 사회생활은 그랬다.
내가 좋은 동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그건 내가 평가하는 게 아니라 동료들이 하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모르는 것도 아직 너무 많고, 어설픈 것도 많고, 그렇게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제가 이 영역은 낯선데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 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해당 건은 어디에 확인해보면 좋을까요?" 결국 나는 질문으로 대부분의 일을 시작한다. 지금껏 내 모든 동료들은 도움 주는 걸 귀찮아하지 않았다. 참 고맙게도 그랬다. 그러니 내 회사 생활은 이런 동료들처럼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최근 다른 회사에서 이직해 온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다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뭘 물어도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그래서 너무 감동받는다고 했다. 결국은 선순환이다.
지난 연말에 회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나를 우아한 인재로 추천해준 동료의 글이었다.(상을 받았다는 말은 아니다.ㅎㅎ) 동료의 마음을 회사가 편지로 대신 전해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기엔 한참 멀었는데 황송했다. 고마운 마음과 복잡한 마음들이 엮여 이 편지를 받고 눈물이 났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시트를 열어 나에 대해 정성스레 눌러쓴 마음이 감사했다. 6개월간 참여했던 TF회고를 마무리하며, 또 다른 익명의 동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다음 프로젝트에도 만나고 싶어요’라는 말에 큰 울림이 있었다. 도움은 전부 내가 받았는데, 누가 이런 말을 내게 해준단 말인가. 내가 한건 도움을 받고 도움을 받은 걸 연결한 것 밖에 없는데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동료 곁에서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이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고 좋은 성과를 내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올해도 나의 첫 번째 다짐이자 목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좋은 동료여서가 아니다. 이 글은 오히려 나와 함께 하는 좋은 동료들에 대한 찬사에 가깝다. 그들의 좋은 점을 본받아서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서. 올해도 잘해보고 싶어서, 그 다짐을 새겨두는 것이다. 좋은 동료들 곁에서 많이 배우고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가 되겠지!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