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어느 겨울의 오후. 둘째는 역류방지 쿠션 위에 누워 낮잠을 잤고, 겨우 한숨 돌릴 틈이 생긴 우리 부부는 거실에 널브러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괜한 호기심이 많은 내 눈에 뉴스 기사 하나가 포착됐다.
"오빠. 중국에서 또 전염병이 돈대."
그때까지만 해도 신종플루나 메르스처럼 바짝 몰아치다 끝날 전염병이겠거니 했다. 뉴스에선 떠들썩했지만 나의 일상엔 그다지 타격을 주지 않았던 그 전염병들처럼, 기침이 주 증상이라는 이 병도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지겠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포털사이트에 폐렴이라는 글자가 자주 등장했다. 맘카페엔 '이 기사 보셨어요?'라는 글들이 줄기차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기다렸다는 듯 확진자가 나왔다.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다행인 건가? 우린 어차피 애기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까."
그때 둘째는 백일이 좀 지났을 때였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돼 대학 병원에 입원했던 이력도 있었다.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게 조심스러웠던 터라, 전염병이 돌지 않았어도 외출을 삼가했던 때였다. '봄 되고 날 따뜻해져서 둘째가 산책이라도 할 수 있을 때쯤이면 다 끝나겠지.' 예상이었나, 바람이었나.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앞으로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 첫째 생각을 하니 안쓰러웠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결국 맘카페 핫딜방에 들어가 '마스크'라는 키워드로 알림을 설정해두고 핸드폰이 울리면 부리나케 손가락을 달렸다. 틈이 나면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새로고침, 새로고침, 새로고침을 눌렀다. 마스크가 생명줄이었던 때였다.
어린이집이 휴원 했다. 마스크도 많이 쟁여놓지 못했는데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첫째는 키즈카페에 가고 싶다고,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매일같이 징징거렸다. 엄마도 카페 가고 싶고 친구들 만나고 싶은데 참아야 한다고 답했다.
반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전염병은 해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스크만 쓰면 된다고 했던 때를 지나 이제는 단계에 맞춰 가게들이 문을 여닫는다. 그렇게 2년이 다 되어간다. 이 지지부진한 전염병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다.
코로나였다.
우리 집에서 코로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둘째 아이다. 둘째는 2019년 11월에 태어났다. 날이 풀리고 바깥 활동이 가능해질 무렵 코로나가 한창 극성이었어서 유모차로 산책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문화센터는 구경도 못해봤고, 돌도 되기 전에 마스크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한 여름에도 커버가 씌워진 찜통 유모차 안에 태워졌다.
상당한 날의 인생을 집안에서 보낸 아이. 요즘 이런 아이들을 '코로나 베이비'라고 부른단다. 세상에. 코로나 베이비라니. 이 아이들에게 마스크란, 밖에 나갈 때 신는 신발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밖을 돌아다니다 마스크 줄이 끊어지면 무척 큰일이 난 것처럼 우는 아이가 안쓰럽다. 한창 예쁜 아이들의 자람이 마스크 뒤로 가려지는 것이 화가 난다.
당연함을 잃고, 잃은 채로 당연해지는 나날들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일상들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재택근무가 자리 잡히는 것? 온라인 수업의 확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철저해져 버린 위생관념?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이 받는 보상은 떠오르질 않는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코로나는 내 잘못이 아닌데, 엄마는 또 죄인이다. 놀이터에 더 자주 나가지 못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해서, 키즈카페를 데려가 주지 못해서. 세상은 참 넓은데 너희의 세상은 고작 이 집 속 이어서.
위드 코로나라길래 신청했던 문화센터 수업을 모조리 취소했다. 새로 산 발레복을 입고 12월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첫째 아이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많아져서 문화센터를 갈 수 없다고 말하니 엉엉 울었다. 몇몇 사람들은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다 같이 코로나에 걸리자는 말로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오늘. 또 어떻게 방역지침이 달라질지, 어린이집엔 보내도 될지, 만약 보내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지, 이 싸움은 언제 끝날지. 해결되지 못할 질문들만 꼬리를 문다.
언제쯤이면 가려지지 않는 숨을 쉴 수 있을까? 벌써 또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