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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A Oct 08. 2022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지 않다

프리워커로 일하며 보통 생애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늘 새로운 회사로 찾아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이 독특한 경험을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깝다. 더 나은 인터뷰를 위한 개인적 성장 관점에서, 그리고 인터뷰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 <인터뷰 회고록>을 연재하고자 한다. (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기반성에 가깝다.)


*각 회사의 대외비는 내용에 담지 않으며, 사명도 포괄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안 좋은 얘기도 쓰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한 적도 없고 험담은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인터뷰 가기 전에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문장이 있다. 그들의 시간은 나와 같지 않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들이 소비하는 시간과 내가 소비하는 시간의 가치는 전혀 다르다. 그게 내가 진행하는 모든 인터뷰의 전제조건이다.


현직자 인터뷰를 진행한다


나는 보통 특정 산업에 종사하는 현직자 인터뷰를 진행한다. 장르는 비즈니스, 기술, IT와 같은 전문적인 내용에 가깝고, 대게 한 인터뷰당 5,000자 이상으로 호흡이 길다. 인터뷰이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혹은 그에 준하는 코스닥 상장사), 떠오르는 스타트업의 C-level 혹은 부서의 장이다.


인터뷰를 따는 방식은 할당에 가깝다. 에이전시가 나를 프리랜서 작가로 발굴해 그들의 고객사로 연결한다. 고객사는 내부 인력이 많은 대기업이나 다수의 거대 클라이언트를 보유한 플랫폼 기업이다. 나는 고객사의 내부 전문가를 인터뷰하러 직접 회사에 찾아가거나 유선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또는 에이전시가 연결해준 고객의 엔터프라이즈 클라이언트를 인터뷰하러 회사에 정식 방문한다.


유상무 상무가 아니라 고객의 고객, 또는 그 고객을 상대한다.


요약하면 고객의 고객을 상대한다고 할까. 인터뷰이는 에이전시와 고객사의 합의로 정해져 있으며 나의 역할은 인터뷰 진행과 기사 작성이다.


인터뷰의 목적은 회사의 서비스나 내부 전문가 홍보다. 브랜드 저널리즘, 인바운드 마케팅의 영역이다. 인터뷰를 통해 기업과 서비스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한다. 혹은 잠재 고객을 확보한다. 나는 에이전시, 에이전시의 고객, 또 그 고객의 고객, 독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 감성적이지 않다


감성적인 내용의 인터뷰와는 거리가 멀다. 팩트 기반의 정보 제공이 작성하는 인터뷰 기사의 가장 기본이다. 여기에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실리를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스토리로 엮어 낸다. 혹은 인터뷰 당사자가 산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와 업무 루틴을 그들의 말로 옮긴다. 해당 인터뷰의 형식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말을 주고 받는 문답형이고, 작성자 시점으로 쓰는 서술형도 있다. 그다음 시간이나 중요도 순서로 엮어 리라이팅 한다. 이는 문답형이나 서술형 기사 공통 편집 방식이다. 대체로 르포 방식을 따른다. 재무 정보 같은 독자가 알면 좋은 기업의 가치는 내가 덧붙인다.


모든 인터뷰에는 여러 장의 인물 사진이 들어간다. 따라서 인터뷰이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그러나 내 사견이 들어간 관찰보다는 인터뷰이의 말을 통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나는 뒤로 숨는다. 인터뷰는 그래야 하고, 특히 산업 인터뷰는 이 방식이 맞다. 따뜻한 관찰자보다는 객관적인 해설자에 가깝다. 해설자이기 때문에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돌아가는 판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모두 나보다 내공이 깊다


처음으로 인터뷰한 대기업은 SK 계열사였다. 그룹의 장과 수석 매니저를 인터뷰했다. 어떤 인터뷰를 가던 인터뷰이는 모두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이 깊다. 나는 내공이 부족한데 내공이 꽉 찬 사람들을 만나려니 사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들 친절하다. 아무래도 기업의 좋은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인터뷰이가 나의 부족함을 참아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터뷰이들은 소양이 넓어서 전문용어와 산업에 대한 해석을 어려움 없이 쏟아낸다. 지식은 많고, 머리 회전은 빠르고, 입은 그보다 느리니 말이 엄청 빠르다. 전문용어와 말의 속도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보통 한 시간이 지난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진이 다 빠진다. 어느 날은 지나치게 긴장해서인지 다리가 성장통 겪을 때처럼 아프더라. 이야기를 듣는 건 상체인데 왜 하체가 아픈지?


접견실에 들어갈 때. 아무도 나랑 싸우자고 안 했는데 괜히 혼자 싸우러 가는 느낌이다.


기업에서 특정 제품/서비스를 도입하거나, 혹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모든 계획은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작업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기업의 완성품을 보통 감상하고 끝난다. 나는 판을 설계한 사람을 만나니 기업이 그린 큰 그림의 스케치 과정부터 추적할 수 있다.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까.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생각하는 폭이 넓고 남달라서 배우는 게 많다.


인터뷰이에게 푹 빠지면 안 된다


바쁜 현직자들의 시간을 뺏는 미안한 일을 덜고자 인터뷰이에 대해 최대한 많이 공부한다. 검색이 허용되는 한에서 인터뷰이에 대해 최대한 찾아보는데, 사실 개인 SNS까지 다 보고 간다. 아는 체 하는 건 당시의 분위기나 필요에 따라서 한다. 산업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으면 책을 읽든 유튜브를 찾아보든 주변의 아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든 해당 산업에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인터뷰를 간다.


물론 기업 측에서 사전 정보 공개를 원치 않을 때도 있다. 아쉽지만 그럴 때는 그 룰에 따른다. 특히나 기업의 기술이나 비즈니스는 대외 공개가 민감한 이야기니까. 보통 C-level 인물에 대해서는 보도자료는 나가도 언론사 인터뷰 조차 거의 없다시피 한다. 인물에 대해서도 기업이 원하는 만큼의 공개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 멘트를 따는 정도가 아니라 한 시간 이상 독대하면서 진행하는 인터뷰다.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깊은 질문이 가능하다. 그래도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다. 기업의 대외 공개 자료를 잘 뜯어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인터뷰하기 한 시간 전이 가장 떨린다.


이렇게 해도 현장 가면 떨린다. 낯선 장소에서 (남의 회사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채로 인터뷰한다. 와중에 옆에서 사진은 계속 찍히고 있고,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고, 인터뷰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음 질문도 생각해야 한다. 인터뷰이가 현안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해줘도 막상 글로 쓰면 답변이 질문에서 벗어난 내용일 때도 있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의 대답이 충분하지 않으면 재질문해야한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상대한테 푹 빠져서 들으면 안 된다. 나중에 회고하다 보면 쓸 게 없다.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


인터뷰라고 하면 거창한 질문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내가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설명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전문가가 생각하는 '특허'의 정의든지, IT 기업의 입장에서 말하는 '장애'의 정의라든지.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인터뷰를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질문이다. 사전이 내리는 정의와 전문가가 현장에서 느끼며 정의하는 한 마디는 힘이 다르다.


유시민, 김어준, 신해철 등 다수의 거물급 인사를 인터뷰한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는 저서「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에서 '인터뷰어는 묻는 것이 일인 만큼 때론 바보 같 권리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뷰를 직접 해보니 간혹 그런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할 때가 오더라. 상대도 바보 같은 질문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난 기꺼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실제로도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ㅎㅎ)


그래도 최대한 다양하고 깊은 답변을 듣기 위해 나름 준비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인터뷰의 목적과 이를 통해 얻어야 하는 정보를 정리한다. 그다음 기본적인 질문부터 구체적인 추가 질문까지 리스트를 짠다. 여기서 겹치는 질문은 뺀.


 사전답변과 질문이 있을 때도 있고, 내가 질문지부터 작성해야 할 때도 있다. 일단은 최종 결과물을 생각해 고객이 원하는 내용의 질문과 인터뷰를 읽은 사람이 궁금해할 만한 것을 먼저 질문으로 선정한다. 사전 답변을 읽고 자세한 내용 설명이 필요한 질문도 적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도 마지막에 몇 가지 추린다.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사로 작성하니 독자의 호기심이 될 수도 있더라.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기업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던져야 할 때도 있다. 본문에 실지 않으면 되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한다. 나는 긴장을 꽤 하는 편이고 준비가 충분해야 그나마 덜 떠는 편이다. 컨디션도 꽤 탄다.


인터뷰에는 갤럭시 탭S8를 항상 가져간다. 출처 삼성전자.


인터뷰를 가기 전엔 반드시 구술로 연습해 본다. 그다음 질문지를 파일로 담아 늘 가져가는 탭을 챙긴다. 파일이 잘 열리는지 확인한다. 인터뷰 가는 길에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는 한 무조건 택시를 탄다. 가기 전까지 계속 구두로 연습하는 게 편하고, 대중교통을 타고나면 정신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사는 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의 회사에 가서 그들의 업무 시간을 소비한다. 인터뷰이는 바쁜 틈새시간을 쪼개 인터뷰 답변을 준비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결재 과정을 거친다. 터뷰이는 긴 시간을 집중해 충실하게 답변해 준다. 발화량으로 따지면 전체 대화의 80%는 인터뷰이의 몫이다. 내가 아무리 멋들어진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터뷰이가 없으면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는다. 인터뷰는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한다고 되는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늘 마지막 인사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한다. 인사를 할 때는 정말 진심을 담아서 한다. 나한테 귀한 시간을 내줘서 고맙고, 듣는 사람을 배려해 쉽게 설명해주려는 그들의 노력이 고맙다. 여러 회사를 방문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어 고맙다. 에이전시가 나한테 믿고 일을 맡겨줘서 고맙다.


그들의 한 시간과 나의 한 시간의 가치는 다르다. 기업의 매출과 그 사람이 기여하는 부분을 어렴풋이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현장에서 질문하고, 기사까지 써서 보내고 나면 인터뷰이를 좋아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늘 그랬다. 다른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상대방과 그의 전문 분야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애정이 생기더라. 인터뷰는 초단기 연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정리하니 세상 인친자 (인터뷰에 미친자) 같아서 민망한데, 그러기엔 너무 고군분투하는 초보다. 공부도 더 필요하고, 앞으로 갈고닦아야 할 길이 멀다. 회고록을 통해 내가 성장했으면 좋겠다. 남들한테 도움이 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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