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Jan 27. 2023

일 그리고 일지, 관찰

2023.01.26

이러다 일기, 일지의 달인이 될 것 같다. 


동기부여나, 인정, 칭찬, 급여상승, 승진... 이런 것들이 정말 세속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가엽게도, 나는 이런 세속적인 게 지속적으로 부여되지 않으면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하고 있는 일도 하고 싶지 않고, 이걸 하고 있는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고, 그렇다. 

그래서, Work journal을 쓰기로 했다. 


아마도 일주일 전부터 썼을 것이다. 막 회사에 들어와서부터 썼었더라면 조금 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어디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것 하나하나 써 내려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왠지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남들 눈에 하위계급 같고,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즈음, 홧김에 이직 생각을 했다. 


이직자리를 알아보려고 링크드인을 뒤지고, 내 레쥬메를 업데이트하다 보니 스스로 깨친 게 있다. 내가 프로페셔널 한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큰 건이던 아니든 간에 무조건 어떤 방식으로 던 피드백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간 칭찬과 인정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코멘트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런 거겠지"하며 흘려보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본인이 이제 것 해온 이런저런 프로젝트, 일 모두를 같이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직을 하던, 취직을 하던 뭘 하던, 사업을 준비하던, 사회관계에서 일어나는 캐피털리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든 태그나 키워드를 끼워 넣어 우리 자신을 가꿔서 높은 가격에 내놔야 한다, 팔아야 한다. 


팔려고 보니, 어? 내가 뭘 잘했는지, 뭘 인정받고, 뭘 하며 지냈는지 등을 기억해 내거나, 말해내지 못하면, 누가 우리를 살려고 할까. 잘 모르는 물건에는 손도 안 데는 게 이사회인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분명, 이 회사에 들어와서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인간관계, 엄청난 변화, 굉장한 지식 소모, Knowledge sharing 등등, 한건 엄청 많은데, 왜인지, 문장으로 풀어내라고 하거나, 이력서에 쓰려고만 하면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엔, 내가 뭐 했지... 라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노동력과 나의 지식 그리고 스킬을 보고 나의 재능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알아가고 싶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나 잘했는지를 분명 글로, 숫자로, 내 말로 행동으로 알고 싶을 텐데, 생각하면 할 주로 한 게 없는 것 같거나 기억나지 않으면 어떻게 나에 대해서 말할까.


그렇다고, 저는 열심히, 노력해요. 이거 하나로 먹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무식하게 회사 이메일에서 내가 첫 번째로 받은 이메일, 전체메일, 미팅 초대, 캘린더 등등을 일일이 다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심코, 나의 상사도 아닌 영국 Head PM 이 (현재 나의 Acting 매니저) 전체메일로 나의 라인매니저와, 영국지점장에게 보낸 메일을 발견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인재를 발견했고, 들어와서 나에게 물은 질문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며, 나의 적극성을 굉장히 칭찬한다고. 그리고 이걸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바로 맥북의 스크린숏 기능으로 이미지를 따고, 내 구글 드라이브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금 나의 6개월을 기억해 냈다. 늦잠 자고,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고, 정말 열심히 모니터가 뚫어지게, 회사에서의 그 불편한 남들 시선을 이겨내고, 홀로 디자이너로 영국에서 일한 나였다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매일 열심히 8-9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머리로 말하는 대신, 이제 글로 쓴다. 

증거를 남겨둔다. 훗날, 미치도록 고민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할 나를 위해서. 

보라고 너는 인생 헛살지 않았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