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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30. 2023

소셜과 만남, 그리고 인간, 관찰

2023.01.29

결혼하고 정말 오랜만에, 런던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원래는 내 친구도 아니고, 대니의 친구들이었는데 상하이에 놀러 왔을 때, 집을 내주며 함께 동거동락하며 지내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가까워져 친구가 되었다.


아직도 서로를 막대할 만큼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항상 인스타에서 안부도 보고, 뭘 하는지 뭐 하고 사는지, 뭘 먹는지, 어딜 가서 무슨 영화를 받는지 등등 알고 지내는 사이로 거듭났다. 서로 그룹챗방이 따로 있어 서로 뭐 하고 사는지 텍스팅을 하지 않아도, 다 웬만큼 소식을 알고 지내다 보니, 이제는 가족 비슷끄므리 하게 친하다.


조지는 여전히 회사욕을 하면서도 월급을 꾸준히 꽤 괜찮게 주고 하니, 조금만 더 버텼다가 다른 곳에 자리가 나면 그쪽으로 갈 생각으로 살고 있고, 크리스는 꾸준히 리테일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스토어 매니저라도 항상 하는 일은 똑같고, 봉급도 그다지 다르지 않고, 자기 집에서 바로 코앞에 떨어져 있는 곳이라 삶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유럽여행을 이리저리 다니며 꽤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매번 리버풀 스트릿 역을 지나치고, 그 역을 이용하기도 하면서도 한 번도 가고자 한 욕심이 없었던 레스토랑 Eataly. 한국에도 크게 있던데 웨이팅이 3시간이라는 기겁할 소리를 듣고, 정나미 뚝떨어져 버린 그곳에 조지가 예약을 잡았다고 해 놀랐다. 


한국에서도 안 먹은 걸 이렇게 쉽게 영국에서 먹을 줄이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들과 함께 뭔가 하면, 어쩐지 왜인지, "순조롭다"라는 느낌이 항상 든다. 

예약시간이 되지도 않았지만, 들어가서 문의하니 바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고, 사람이 우악스럽게 많음에도 순조롭게 주문하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나중엔 레스토랑을 쭉 돌아보며 사고 팠던 이탈리 티라미수도 사고.... 나 혼자 했더라면 이렇게 순조롭지 않았을 일인데, 이것들과 함께라면 뭔가 순탄하다. 가볍고, 스트레스가 없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특히 쇼핑몰이나, 우글우글 사람들이 몰려대는 레스토랑에 가면 기가 쪽 빨려, 말할 힘도 없이 털썩 기차에 앉아, 말 시키지 말라며, 이마에 내천자 주름을 만들고 다닌 지가 어언 30년인데, 왜인지 이번엔 달랐다. 


끊임없이 4시간 연장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했어도, 항상 털어버릴 수 없었던 짜증스러운 기 빨림과 녹초 된 나의 몸 그리고 피곤한 두뇌와 마음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이제는 10시 이후에는 술 못 마시겠다는 나의 노화된 간과 몸 컨디션만 느낄 뿐이었다.


가볍게 포옹을 하고 잘 가라고 하니, 조금 서운했다.

인간이 잘 가라고 하는데, 아쉽고 서운한 마음.. 이게 정말 내가 느끼는 마음인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신기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있어도 괜찮은 그런 사람 그룹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또 이 삶과 삶에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더 스며든다.



지난번 멘토미팅에서 SAP 리서처로 활동하시는 분이 추천해 주신 책을 밀리의 서점에서 혹시나 하고 찾아보았다. 스트리밍 독서 앱이라서 있는 책도 없는 책도 있어, 이 책은 없을 수도 있겠다 했는데 웬걸, 한국어판으로 떡하니 있더라.


바로 구독을 시작했다.

"멀티플라이어"


작가가 말한 리더십 중에는 사람의 재능을 100% 이상 끌어내는 리더인 멀티플라이어가 있고, 사람이 가진 재능도 50%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디미니셔가 있다고 한다. 


나쁜 리더와 괜찮은 리더라고 불리는 대신, 이렇게 이런 이름으로 태그를 붙여 읽으니, 조금 더 있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독립생활을 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Gap year/month 한번 없이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많은 디미니셔를 만났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멀티플라이어도 있었을까. 


인간은 부정적인 것에 많이 끌리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더니, 더욱더 부정적임을 타고난 시니컬한 나는 디미니셔 말고는 생각나는 사회생활이 없다. 


항상 자기들이 잘났고, 무조건 자기가 천재라, 다른 사람은 자기 말을 무조건 복종하듯이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디미니셔들. 자기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정말 참으로 몰랐다. 자기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기의 낸 답이 무조건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단 물리치고 봐야 한다. 인생에 득 될 것이 전혀 없더라.


웃기게도, 현 직장에서는 디미니셔와 멀티플라이어의 예시가 딱 내 눈앞에 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둘을 side by side 경험하며 비교할 수 있다니...


미국 매니저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런 디미니셔인 것 같다. 나와의 소통을 주도할 때는 주로 자신이 만들어낸 플랜과 설루션이 내 디자인과 작업물에 입혀져야 할 때.. 그때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나와 미팅도, 슬랙 채팅도 따로 하려 하지 않는다. 처음엔 왜 이렇게 나를 그냥 방치할까,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제는 그 분노할 힘도 없어, 나는 그저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네네, 할 뿐,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따로 나의 걱정, 감정, 생각, 의견등을 표출하지 않는다. 

정확한 디미니셔의 표본이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의견을 내고 싶지도, 일을 더 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뇌를 꺼버린다.


영국매니저는 전형적인 노력형 멀티플라이어이다. 딱히, 굳이, 시간을 내서 다른 팀의 신입디자이너인 나를 자기가 도맡아서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데, 자기 다이어리에 일주일에 1시간씩 꼭 시간을 나를 위해 비워주고, 항상 슬랙에서 내가 어떤지, 일이 어떤지 물어봐줬다.

인간의 의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는, 나의 노동력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이 사람도 나에게 오구오구 해줘야 하는 입장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보니, 멀티플라이어의 계략이 딱! 먹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스킬을 선보이고 싶고, 더 뭔가를 생각하고 해 보이고 해내고 싶고, 이 사람에게는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게 이관계를 만든 이 사람에게도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일 할 때의 즐거움과 희열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아, 이게 일맛이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도대체 어떤 완벽한 리더십을 원하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책 한 권에 그 답이 있었다. 


이 사람에게만 의지 할 것 같은 그런 불안한 예감도 든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한 사람에게만 많은 의존감을 보이는 것이라는데, 현재 상황이 그렇게밖에 돌아가지 않는 것도 답답하지만, 이렇게라도 돌아가니 그래도 이 회사에 있는 동안은 숨좀 트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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