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6
이러다 일기, 일지의 달인이 될 것 같다.
동기부여나, 인정, 칭찬, 급여상승, 승진... 이런 것들이 정말 세속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가엽게도, 나는 이런 세속적인 게 지속적으로 부여되지 않으면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하고 있는 일도 하고 싶지 않고, 이걸 하고 있는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고, 그렇다.
그래서, Work journal을 쓰기로 했다.
아마도 일주일 전부터 썼을 것이다. 막 회사에 들어와서부터 썼었더라면 조금 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어디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것 하나하나 써 내려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왠지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남들 눈에 하위계급 같고,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즈음, 홧김에 이직 생각을 했다.
이직자리를 알아보려고 링크드인을 뒤지고, 내 레쥬메를 업데이트하다 보니 스스로 깨친 게 있다. 내가 프로페셔널 한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큰 건이던 아니든 간에 무조건 어떤 방식으로 던 피드백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간 칭찬과 인정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코멘트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런 거겠지"하며 흘려보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본인이 이제 것 해온 이런저런 프로젝트, 일 모두를 같이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직을 하던, 취직을 하던 뭘 하던, 사업을 준비하던, 사회관계에서 일어나는 캐피털리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든 태그나 키워드를 끼워 넣어 우리 자신을 가꿔서 높은 가격에 내놔야 한다, 팔아야 한다.
팔려고 보니, 어? 내가 뭘 잘했는지, 뭘 인정받고, 뭘 하며 지냈는지 등을 기억해 내거나, 말해내지 못하면, 누가 우리를 살려고 할까. 잘 모르는 물건에는 손도 안 데는 게 이사회인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분명, 이 회사에 들어와서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인간관계, 엄청난 변화, 굉장한 지식 소모, Knowledge sharing 등등, 한건 엄청 많은데, 왜인지, 문장으로 풀어내라고 하거나, 이력서에 쓰려고만 하면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엔, 내가 뭐 했지... 라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의 노동력과 나의 지식 그리고 스킬을 보고 나의 재능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알아가고 싶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나 잘했는지를 분명 글로, 숫자로, 내 말로 행동으로 알고 싶을 텐데, 생각하면 할 주로 한 게 없는 것 같거나 기억나지 않으면 어떻게 나에 대해서 말할까.
그렇다고, 저는 열심히, 노력해요. 이거 하나로 먹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무식하게 회사 이메일에서 내가 첫 번째로 받은 이메일, 전체메일, 미팅 초대, 캘린더 등등을 일일이 다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심코, 나의 상사도 아닌 영국 Head PM 이 (현재 나의 Acting 매니저) 전체메일로 나의 라인매니저와, 영국지점장에게 보낸 메일을 발견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인재를 발견했고, 들어와서 나에게 물은 질문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며, 나의 적극성을 굉장히 칭찬한다고. 그리고 이걸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바로 맥북의 스크린숏 기능으로 이미지를 따고, 내 구글 드라이브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금 나의 6개월을 기억해 냈다. 늦잠 자고,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고, 정말 열심히 모니터가 뚫어지게, 회사에서의 그 불편한 남들 시선을 이겨내고, 홀로 디자이너로 영국에서 일한 나였다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매일 열심히 8-9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머리로 말하는 대신, 이제 글로 쓴다.
증거를 남겨둔다. 훗날, 미치도록 고민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할 나를 위해서.
보라고 너는 인생 헛살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