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31
밀리의 서재가 요새 날 살렸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처음엔 정말 책을 읽고 싶은데, 회사에서도, 내가 스스로 공부할 때도 지겹게 본 영문으로 된 아티클이나 서적은 정말 더는 읽고 싶지 않았다. 한글로 된 서적을 영국 어딘가에서 구하려니, 종이로 된 책은 무게도, 택배비도 만만치 않았고, 아마존 킨들에서는 뭐 찾을 수 없고...
어딘가에 나처럼 표류하는 인간이 있으려니 하고 구글링을 하다 얻어걸린 것이 밀리의 서재다.
정말 천만 다행히도, 핸드폰인증이나, 신용카드의 이용 없이도 애플 pay로 구독이 가능했고, 가격도 괜찮더라.
강력추천한다.
그때만 해도 2022년 말, 도대체 이 놈의 인생이란 놈을 방황만 하게 하다 끝내야 하는 건가 정말 표독스럽게 머리에 쥐 나도록 생각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심지어 나의 책장 이름도 "살자, 살아라"라고 지었다.
그렇게 간절했나, 지금 다시 보아도 조금 힘겹다.
요 이틀간 정말 후루룩 국수 말듯이 읽어낸 책의 이름은 "모든 삶은 빛난다"이다.
제목만 봐도, 이건 또 어디서 굴러 나온 자기 계발 책인가, 아니면 심리학 책인가, 아니면 어줍지 않은 인생의 위안에 대한 모음집인가... 했는데, 생뚱맞게도 철학 책이었다.
와 철학.
상하이에서 대학 다닐 때 전공 중 하나가 정말 진짜배기 철학이었는데, 철학교수도 이상했지만, 도저히 노멀 한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관점들과 가치관, 빼곡한 그리스 학자들의 이름, 그걸 또 중국어방식으로 써내야 C학점이라도 받는 짓거리를 하니, 나중엔 철학의 철자도 보기 싫었다.
누가 철학 얘기하면 가서 뒤통수를 날리고 싶을 정도로, 다시는 사회 나가서도 보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재미나게 읽었다니.
작가가 천재다.
철학은 모던하고, 천재적이고, 그리고 삶을 굉장히 엘레강스하게 살아가는 그런 귀족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철학은 살아가며 경이로움, 놀라움, 공포, 불안을 맞닥뜨릴 때 비로소 탄생한다고 하며,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의 도구를 발견하고 싶다는 자각에서 탄생한다고 했다.
인생을 통달한, 저 미지의 어떤 것, 평온에 극치의 그 어떤 존재가 행하는 사치 중의 하나가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저자는 그런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경험하는 동안 편안함에서 일부러 벗어나, 항상 스스로를 공포에 몰아넣고, 어쩐지 고통을 감내해야 얻어내는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표류하기" 섹션의 한 곳을 보면, 계속해서 우리는 의심을 하고, 저절로 익숙하게 행해졌던, 숨쉬기, 책 보기, 어딘가를 바라보기, 걷기 등등 이런 행동 들을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파고들고, 다시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다.
집밖으로 나가서 구글맵을 켜고, 목적지를 누르는 것이 아니고, 핸드폰도 기기도 다 끄고, 그저 걷고 걷다가 자기가 원하는 지점, 무언가 시그널이 오는 지점에서 공포와 불안을 무릅쓰고, (심지어 그걸 즐기며?) 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깨치고 이미 아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이걸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3월, 세상에 팬데믹이라는 게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영국에 있었다. 곧 집을 찾아 대니랑 나가서 살생각으로 돈도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 덮친 락다운은, 나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고, 심지어 장도 볼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거의 국제미아처럼 떠돌아다닐 때 나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평화와 자유는 스트릿 러닝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해놓고 한 가구당 한 사람씩은 밖에 나가서 걷고, 운동해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지침을 내렸다. 나는 무작정 알 수 없는 그 시골동네에서 뛰었다.
정말 이런 시골길을 내가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논밭이 드넓은 시골이었다.
가다 보면, 양, 말, 소들이 있었고, 가다 보면 구불구불 좁은 길이었다가 또다시 차가 드나드는 꽤 넓은 길로 바뀌었다.
절대로 날씨예보에 따라 움직인 적 없는 영국의 그 겨울날씨는, 내가 다니는 스트릿러닝에, 안개와 비를 더해 나의 불안함을 더 증폭시켰다. 심지어 심카드도 없는 상태라, 내가 당시 의지할 수 있던 건, 걷고, 뛰는 내 두 다리와, 그나마 시간을 볼 수 있던 핸드폰뿐이었다. 지도도 신호 시그널도 안 잡히는 거리에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어마무시하게 길치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지 않을까 라는 막막한 희망과, 끊임없이 굴러가며 저게 흰 지붕이 우리 집인가, 저 갈색벽돌이 우리 집 벽돌인가 하는 나의 두 눈이 그래도 나를 계속 달리게 했다.
그렇게 집을 한참 찾다가 웃기게도, 집 찾을 생각이 멈췄다. 그냥 여기에서 꺾고 저기에서 다시 꺾으면 어떻게든 돌아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러닝에 몰입, 그렇게 난생처음 시작한 스트릿러닝은 그날 비와 함께 무려 거리 4km와 6.2km/h라는 기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끝이 났다.
그 힘들지 않은 신기함과, 팬데믹이 가져다 준건지, 아니면 나의 공포가 불러온 머리의 흰 백지장 같은 공간이 불러온 건지 모를 몰입감은 아직도 신기하게 기억에 꼭 남는다.
그 뒤로도 하마 4개월간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꾸준히 뛰었던 것 같다.
스트릿러닝을 계속했더라면, 지금까지 연습했더라면, 내가 내면의 레이더를 좀 더 인식하고, 표류하는 방법을 지금쯤은 통달했을까?
그랬더라면 지난 2년간의 모든 방황과 미친 짓거리가 조금은 나아졌을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