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1
새해를 맞이해서 달라진 나의 모습을 선보이겠다며 시작한 것 중 하나,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하루에 하나 일지 쓰기였다.
그리고 호흡하기, 그리고 루틴 짜기.
여러 개 맞춰놓은 알람은 아직도 그대로. 덕분에 약을 똑같은 시간에 식은땀 흘리지 않고 잘 챙겨 먹고 있다. 물론, 살짝살짝 중간에 계획이 바뀐 적도 있다.
요즈음의 일상은, 밥 먹고 요가하기, 그리고 일기 쓰기로 바뀌었다.
이렇게 생활패턴을 바꾸니, 정말 희한하게도 절대로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았던 소셜미디어의 무한 스크롤질을 서서히 멈추게 되었다.
멈추겠다고 딱 마음잡고, 담배 끊어내는 것 마냥 뭔가를 다짐한 것도 아니고, 몸에 해롭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그렇게 두뇌와 머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렇게 저렇게 日과 月의 숫자가 바뀌고, 1에서 2로, 2월로 들어섰다.
그리고 회사 팀 내에서 해야 하는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미친 듯이 뛰는 가슴과, 긴장된 손과 발을 생각하다 솔직히 2월인지 1월 인지도 몰랐지만, 간사하게도 프레젠테이션을 잘 끝내고, Head PM에게서 들은 Well done의 한마디에, 아! 오늘 2월이구나, 2월의 시작이 좋은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2월이 왔다.
한 달 동안 매일 같이는 못해도 꾸준히 일지를 쓰고, 꾸준히 귀찮고, 게으른 나의 마음을 뒤로하고,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경림책상에 앉아 쓴 나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냥 흘려보내기 뭐 한 근 30개의 일지, 이 일지의 한 달간의 주제를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전에 적은 나의 글들을, 살짝 드는 마음의 거북함, 오글거리는 손가락 발가락과 함께, 살펴보았다. 매일같이 적었던 관찰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앞의 주제, 그리고 첫 문장부터 강하게 적어 내려갔던 나의 생각과 느낌, 감정...
세러피선생님께서, 1달 동안 꾸준히 일지를 적어본 결과, 주제가 어떻게 정해졌나고 물으셨다.
나는,
글쎄요, 그냥 애매모호한 것 같은데요, 뭔가 보트 위에 저 혼자, 바다도 아니고 호수 같은 데서 떠있는데, 앞에 안개가 자욱해 잘 어디로 가는지 안 보여요. 근데 보트가 물 위에 떠있긴 하네요.
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강가나, 바닷가, 어딘가에 침체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래도 어딘가를 향해서 출발은 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시며,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도 출발은 했다고, 아주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나는 "애매모호"와 "안개"를 생각하며, 아 뭔가 어중 뜨는 느낌이다 했는데, 역시 의사 선생님은 달라도 다른 것인가? 이런 상황의 이야기 속에서도, 출발을 보시다니. 신기하다.
1월의 주제는 그래서 : 어딘가로의 출발
이라고 정하기로 했다.
얼마나 이게 더, 아니 몇 달간이나 더, 아니다. 몇 년간이나 더 이렇게 어중이떠중이로, 애매모호한 상태로 물 위에 둥둥 떠있을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한 것이 분명하다.
분명, 떠있는 그 조각배 위에 나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 발과 손을 굴러, 아마도 호숫가나 강가에서 배를 밀며 나왔을 것이고, 노를 저어 어디든 가다가, 안개를 만나, 그냥 이도저도 못한 채로 고요히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게 아닐까 싶다.
요새 책을 많이 읽어 그런가, 회사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고, Anology, 비유를 참 많이 쓴다. 가끔 이런 이미지적인 비유감이 확 먹혀들 때도 있다.
오랜만에 나온 햇살과, 창문밖에서 들려오는 Strike 시위대 소리 때문에, 창문을 열었다.
우리 집 아래 지붕에, 벌써 나뭇가지 한 조각 한 조각 모아대는 갈매기 부부도 보이고, 새록새록 올라오는 이끼들도 보인다.
봄의 냄새가 슬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