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Feb 28. 2023

꾸준한, 생각 없는 의지 그리고 관찰

2023.02.27

2월이 간다. 


2월의 절반을 휴가로 보내, 무언가 한 달을 "보냈다"라는 느낌이 안 든다. 그래도 월급날은 따박따박 돌아오고, 2월이 Fiscal Year의 시작이라고 느껴질 만큼, 대니 회사에서는 보너스 및 연말 미팅 등등이 치러졌다. 


나는, 갑자기 급작스레 팀 내 프로젝트 우선순위가 바뀐 만큼, 그냥저냥 이리저리 미팅에 끌려다니며, 회사에 대해서, 내 인생 전혀 알지 않아도 될 것 같았던 남의 나라의 금리와, 대출, 은행 Core banking 서비스 등등을 배워내고 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돌아오는 변화구에 아직도 나날이 정신 못 차리는 건 여전하다.


회사 이메일 inbox에 private 의료보험에 대한 클레임이 잘 처리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아, 그렇지, 회사시작하고 약도 바꾸고 의사 선생님도 바꾸고, 그리고 테라피도 시작한 지 꽤 되었구나, 갑자기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또 갑자기 새삼스럽게 왜인지 별 탈 없이 지내온 것 같은 느낌을 뒤로하고, 내가 어떻게 변화한 건지 다시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육체적인 변화가 꽤나 컸다. 


일단 몸이 항상 부은 것 같은 느낌이 없어지고, 실제로 살이 빠졌다. 이유는 아마, 내가 유난이도 집착했던 음식, 다이어트 그리고 음식에 대한 통제가 많이 없어져서가 아닐까 한다. 요새 생각 없이 초콜릿을 많이 먹는다, 그래도 그다지 살이 찌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든다. 이런 맛을 그렇게 30년간 입에 안 대려고 아등바등 대었다니. 실제로 선생님께, 초콜릿이 제 인생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것 같다는 소리도 했다.


실제로, 살이 빠지니 문득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내 인생에서 이제 살 가지고, 몸 가지고 투덜거릴 일 하나는 줄었구나."였다. 인생에 평생 숙제 같았던, 낙오자 같은 느낌을 주었던 그 무언가가 내 평생의 리스트에서 줄이 그어지며 없어졌다는 그 느낌은 참 가벼웠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전히 많이 한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나만의 그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뭔가 Default 값으로 그냥 태어나서부터 존재해 온 내가 지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오는 습관, 각인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대신, 


나의 대한 의심이 나의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이걸 얘기할 수 있을까? 얘기하고 나서도 내가 눈치 보지 않을까? 이 사람이 이걸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내가 이 사람 표정을 보고 또 주늑든다면?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껏 내가 쌓아왔던 모든 것이 그냥 허구라면, 누가 알아줄 거야 이걸? 아니, 그럼 내가 이 자리에 있을만한 그런 사람인가? 

나의 무엇을 보고 사람들은 나에 곁에 있을까,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거늘,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일까? 변태인가 정신이상자인가?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는가, 내가 바보인가 아니면 정말 이 세상을 살기에는 부적합한 그런 사람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하자면 이것 말고도 아마 리포트로 오만자는 넘게 써낼 수 있지만, 대충 나의 뇌회로는 저랬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에서 


나는 왜 이걸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과 미팅을 잡는 것을 꺼린다면, 또 자신감이 없어서 이러니 자책하는 것을 그냥 담배 끊어내듯이 그만두었다. 생각의 체인자체를 끊어내고, 다시...


왜 나는 이 사람과 미팅하는 것을 꺼릴까? 왜 나는 불편할까? 내가 불편한 무엇인가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을 가? 내가 불안해하는 것, 긴장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은 곳의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관심"이란 것을 가지게 되었다.


또! 또! 또! 이놈의 자신감, 이놈의 긴장성 불안, 공황, 또 지랄이지! 할 것을 왜 긴장을 하니..로 바꾸니, 상당히 어색하면서도 계속 연습하니 또 되더라. 

그래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내가 무조건 못나서 그런 것이라 자책하기 전에, 왜 그런지 멍하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성적인 회로보다는, 멍하니가 중요하다.


여전히 한 가지 같은 건 뱃속이 간질간질, 심장이 간질간질한 뭔가 긴장한듯한 흥분한듯한 심장의 뜀박질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기분이 나쁘게 공황이 올 것 같은 긴장과, 손발이 땀으로 가득 찬 불안이 아니고, 뭔가 속에서부터 넘쳐 오르는 기대 가득한 흥분감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엎드려뻗쳐를 당하고, 저기 저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빠따"소리를 들으며 내 차례는 도대체 언제지,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는 게 이전의 내 모든 99%의 시간이 다였다면, 요새는 이 흥분감이 주는 에너지로 뭘 "더" 어떻게 "좋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을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도 이리저리 머리 굴리느라 힘은 들어도, 뭔가 내가 주어진 일보다 "더" 하고 있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의지가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의지는 결과물로 돌아오고, 다시 인정으로 돌아왔다.


긴장과 불안은 나에게 더 이상의 기대와 의지를 볼 수 없게 내 눈을 막았다. 그래서 다른 소셜미디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Quiet Quitting, 어차피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만 100프로 열정을 다하면 뭐 하나 라는 생각이 나를 더 어둡게 했다. 하고 있는 것과 해내야 하는 task들이 별것 없어도, 3개 중의 1개도 하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물 아니면 찬물이었던 나에게, 어차피 이렇게 미지근하게 갈 거라면 내가 여기 왜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나를 더 괴롭혔다. 


내가 100-150%를 선보인다고 해서 돈을 막상 더 주진 않는다. 회사란 게 그런 거지 뭐.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만한 결과물이 하나둘씩 나왔다. 그리고 막상,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은 그걸 기가 막히게 귀신같이 눈치 채주 었고, 인정해 주었다. (이것도 복이다.) 


긍정적인 선순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계속해서 그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쩌다가 끝도보이지 않던 지하 100층의 나락에서 여기까지 뭘 했다고 이렇게 왔을까? 약을 바꿔서? 내가 루틴을 빠지지 않고 해서? 영국에서의 삶이 더 녹아들어서? 


이제는, 그 Kick이 무엇인가도 알고 싶지 않다. 결국, 약이던 상담이던, 운동이던, 적응이던 뭐던 간에 이 모든 건 내가 내 의지로 내 감정과 에너지로 이루어낸 것이고, 어느 하나가 요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져있다. 


꾸준히 아무 생각 없이, 나를 해치는 어둠을 단박에 끊어내려는 마음과, 꾸준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 하루하루를 잘 보내려는 마음 그 두 개가 나를 이제껏 잘 살게 했다.


그리고 다시 오는 봄과 3월, 기대된다. 

또 뭐가 어떻게 변하고, 나는 어떻게 어느 앞으로 나아갈까. 

작가의 이전글 나의 변화, 그리고 관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