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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Feb 24. 2023

나의 변화, 그리고 관찰

2023.02.23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알아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게 내 인생의 정의 중 하나였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인생의 진리였다.


타고난 사람의 성향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환경에 사람을 만들고 깎고 다듬을지라도 결국에는 다시 습관처럼 나쁜 것은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멍청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강한 의견 못지않게, 나는 나 자신에게 더 혹독했다. 비정한 모성애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어릴 적 다혈질적인 성격덕에 굉장히 사는 게 힘들었다. 무언가 빨리 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심장이 벌컥 뛰고 식은땀이 나고, 긴장성으로 몸이 덜덜 떨리게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 때면, 내가 하고 있던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화내고 짜증 내는 것뿐이었다. 어릴 적엔 그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그런 내 안의 바뀔 수 없는 원천중 그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이것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걸 나의 선택지에 없었다.


책상 위, 내가 필요한 필기구가 바로 나오지 않으면 "아 큰일 났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라는 생각은 나에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인생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니, 그다음 자연스레 나오는 나의 행동은, 책상을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그 행동을 그렇게 내가 매주 했다. 


그런 행동을 타인은 고수하고, 가족이 볼 때면, 뭐 저런 미친 x가 다 있나라는 눈빛과 표정, 그 행동에 붙는 꼬리표는 항상 같았다.

"지 아비 닮아 저모냥이지." 

결국 DNA와 피는 속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이 나만의 그리고 타인의 대한 나의 답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조그마한 희망은 있었다. 어느 심리박사 한분이, 각고의 노력과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면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 한마디에 나는, 각고의 노력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24/7 돌아가는 투철한 의지와 함께, 이것 아니면 나의 미래와 희망은 없다는 인식과 함께, 살아갔다.


그 여정이 외롭긴 했지만, 나는 바뀌었다.




한국에 나가서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중요한 루틴 중 하나가 머리를 하는 것이다.

더럽게 돈 만 비싸고 시간은 많이 걸리는데,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영국 헤어드레서의 스킬은, 내 안의 "죽어도 여기서 머리는 자르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의지를 길러내었다.


그리고 동생의 소개로 찾아간 어느 마포의 한 체인점.


정말 처음 간 동네에, 처음 본사람들과, 염색과 탈색전문답게 온갖 형형색색의 젊은 무리의 머리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처음 내 머리를 맞긴 스태프분과 헤어드레서분에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면 인싸라는 소리 많이 들으시겠다." 

"동생분이랑 성격이 완전 반대시네요" 


Context; 항상 어릴 적 줄곧, 동생은 순하고, 나는 성격이 더럽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랐다. 그래서 동생과 성격이 다르다고 하는 말은 나에게 있어 욕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멘트, 참 신선했다. 신선하다 못해, 정말 충격적이었다. 


네? 내가 인싸라니, 내가 성격이 동생보다 더 "밝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밝다, 사람이 주변에 많게 생겼다는 말은 내 인생에 절대 들어볼 수 없겠거니 하는 말들 중에 두 개였다. 

너무 신선하고 놀라, 오죽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보인데, 신기하지 않아?라고.


겉으로 보면 굉장히 까칠하고 냉정해 보이는데, 또 친하게 지내면 엄청 개 같은 여자.

동료와 상사에게 줄곧 들어온 피드백이다. 


항상 처음 본 회사사람들과도 쉬이 가까워지고, 할 말이 뭐 그리도 많은지 토픽이 입에서 술술술 튀어나오는 사람들, 방금 1시간 전에 본사람과도 1년 본 사람만큼이나 친해지는 사람들이 죽도록 밉고 질투가 났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나도 그렇게 되보겠다며, 그 사람들이 하는 말투, 손짓, 행동, 어깨를 올리고 내리고, 언제 어느 타임에 웃고, 안 웃고, 무슨 토픽을 물어보는지 무슨 말로 대화를 끝는지 등등.. 모든 것을 관찰하고 카피했다. 온몸에 염증이 퍼져 나중에는 방광염으로 회사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렇게 까지 해보려고 했다. 결국은 실패였지만.


영국 매니저에게 제주도에서 사 온 조그마한 선물이 있으니, 나중에 오피스에 들르면 주겠다고 한 뒤, 내가 너의 직속 팀원도 아닌데, 영국팀이라는 이유하나로 챙겨주지 않아도 될 날 챙겨줘서 고맙다. 염치없게 눈치 보이는데도, 결국 너에게 들러붙을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라고 전했다.


"If you are a dick head, I wouldn't do that." 

라고 했다. 정확히 Dick head라는 말도 써가며, 껄껄껄 그렇게 나에게 웃었다.


내가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했다.

Dickhead 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점수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을수 있지만, 나에게는 저 말이 컸다.

적어도 내가 나쁜 년, 냉정하고 쓸데없이 도도한 사람은 아니니까, 저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바뀌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피드백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는 사회관계였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바닥만 파고 들어가는 그런 제자리걸음은 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안심이 되었다. 


나 자신이 싫어 얼마나 나를 그렇게 찢어 갈겼었나, 얼마나 싫으면 하루하루 나를 어디에 내동댕이 칠까, 어떻게 이 삶을 끝낼까를 생각했을까. 스스로 증오하고 혐오하던 나의 나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는 건 정말 희열이 가득한 일이다. 


그렇게 내가 조금 바뀌었다. 

언제 또 나의 미친년이 튀어나올까 이제는 걱정이 되지 않는다. 신기하다. 그 미친년이 어디로 간 것인가, 아니면 원래 미친년이 없던 것이었을까.


상관없다. 그냥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루를 살고 또 살면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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