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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r 03. 2023

라이브웨어와 재편 그리고 관찰

2023.03.02

화요일, 일주일 중에 가장 어정쩡한 하루다. 

반이 지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첫날도 아니고, 막날도 아니고 어정쩡한 이 하루. 


일부러 그래서 테라피 선생님과의 1시간 세션도 이날에 잡았다. 어차피 오후에는 미팅으로 다닥다닥이니, 이 이상한 하루에 아침이라도 릴랙스 하게 시작해 보자는 그런 의도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9시 반, Zoom을 열고, 오늘 하루는 어떤지 대강 1-5까지의 숫자를 나열한 후, 내가 원하는 대화의 토픽을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나의 상태가 최근 들어서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라서, 시작이 힘겨웠다. 항상 부정적인 토픽으로, 이것이 문제다 저것이 문제다, 그 문제 때문에 힘들고 심장이 뛰어 생활이 불가능하다 등등으로 시작한 것 과는 다르게, 이걸 1시간을 얘기해야 하는 데 도대체 뭘로 1시간을 채우고 이야기를 진행할까 계속 머리를 굴렸다. 


굴리다 굴리다 저기 저 밑에 끝에서 건져 올라온 토픽을 선생님께 던졌다.


순탄한 (?) 결혼생활, 결혼이 이번생에 처음이라서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연한 듯 선생님은 지금 결혼생활이 맘에 드냐는 말을 묻고,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말로 이야기를 이끄셨다. 나는 만족하고, 상대도 내가 정말 크게 오해하지 않은 이상 만족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한테 있다 말씀드렸다. 

만족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고, 이번생 첫 결혼 인 데다가, 단 한 번도 살아가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생활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미친 듯이 흘러가 여기까지 온 이 결혼이 과연 10년 20년, forever 계속 "Happily ever after"로 이어질까 아닐까 걱정되고 무섭다고 했다. 


무려 어른들이 말하는 "보고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 나는 주변에서 커플들이 10년, 20년, 몇십 년을 한 지붕아래 같이 지내며, 왠 간한 탈없이 그냥저냥 투닥대며 순탄하게 나고 자란 걸 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리며, 과연 이렇게 보고 자란 내가 순조로운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적인 차이도 굉장하다고 했다. 물론, 양가 쪽 모두가 아시안이고 백인이 고간에 아무런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참말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역시나 부모를 대하는 방식, 자식을 대하는 방식, 경제적인 부분, 먹고 마시고, 말하는 모든 부분이 너무 달라, 초반에 그걸 적응하고 습득하느라 애를 썼다고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갑자기 


"이게 참 중요한 부분 같아요,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을 찾았어요."


라고 15번의 세션 중 단 한 번도 안 하시던 말 끊기를 시전 하시더니, 습득한다는 나의 말에 굉장히 꽂히셨나 보다. 그걸 잡고 넘어가셨다. 


서구의 방식, 나의 방식 이렇게 나누고, 상하이에서 살 때는 나의 방식대로 살다가, 영국에 오니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서구의 방식을 습득하고 체득한 나의 태도에서 "극단적임"을 발견하셨다고 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 백안이면 흑, Dan 아니면 나, 내방식 아니면 남의 방식. 이런 식으로 휙휙 나 자신과 주변을 바꾸게 되면 나 스스로 인식하고 알지는 못해도, "불안"이 오고 "불편"이 온다고 하셨다. 


영국의 Dan의 방식, 그리고 나의 전형적인 한국방식, 이 둘 중에서 뭐가 더 나으니 한 가지를 택해 쭉 이어나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그 무언가를 Re-Invent 해야 한다고 하셨다. 누군가의 결혼방식, 나의 결혼방식 누가 나쁘고 누가 좋고 가 문제가 아니고, 나만의 방식을 만들고 빌딩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제차 말씀하셨다.


최근 들어 자주 힘에 부치는 이 심장의 박동질과, 뭔가 쉴 수 없을 것 같은 머리의 뜀박질과 스피드 이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나의 극단적임에서 왔다는 생각이 바로 들자마자, 유레카, 그렇게 정답은 아니어도 준답은 찾았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라는 도서에서 최근에 생후배선이라는 (Liveware) 요상한 단어를 배웠다. 한국어로는 어려운데 영어로는 꽤나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우리 뇌는 하드웨어가 아니고 라이브웨어라는 요점. 

마음에 꼭 들었다. 


내 뇌가 지속적으로 적응하고 다시 메꾸고 짜 맞추는 그 과정과 같이, 나도 나의 인생의 회로를 재편(再编) 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적응이라는 것으로 나오고, 편한 마음이라는 것으로 나에게 오겠지.


그렇게 새로운 삶을 발명하고 메꿔간다. 


이렇게 당연한 정의와 정서를, 또 새삼스럽게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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