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Mar 08. 2023

가는 신경 잘라내기, 그리고 관찰

2023.03.07

금세 2월이 지나가고 입춘이 오고, 3월이 오니 이제 좀 날씨가 온난해지려나 싶었는데, 눈이 온다... 


마이너스 1도, 정작 한겨울일 때도 마이너스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늘따라 집안이 더 시리고 춥다. 


3월이 시작되고 7일이나 지났다는 생각이 들자, 문뜩, 2월의 테마를 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월의 테마는 나에게 있어 간단했다. "뒤돌아보기."였다. 


2월은 한국에도 2주나 갔다 오고, 심리 테라피도 1달이나 쉬고, 약도 2달치를 미리 받아 선생님과의 진료도 1달이 꼬박 되도록 안 해도 되는 그런 느리 멍청한 달이었다. 2월 첫 주를 보내고, 휴가를 다 지내고 다시 영국으로 14시간이나 되는 직항 기를 타고 돌아오니 2월의 막달이었고 3월이 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약이 내 몸에서 잘 돌고 잘 먹어 들어가고 있는지, 내 심장은 무리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세운 하루 일과의 루틴은 순탄하게 돌아가는지, 엄마는 어떤지, 동생은 어떠한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 잘 돌아가는지 등등을 눈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계속 평가지를 돌리고 돌렸다. 


이렇게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보면 원래 내가 평탄히 가고 있던 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왠 UX의 장난인가 아니면 천지전능한 인간이 내 인생이 너무 원활하게 흘러가 태스크를 한번 주고 싶었나... 내가 가던 원래의 길은 없어지고 구불구불, 불안 불안한 길이 펼쳐졌다. 그렇게 3월의 첫 주는 공황과, 불안, 불면증, 한숨등의 시작으로 꽉 채워진 힘든 첫 주였다.



하루의 10시간 남짓을 보내고 있는 회사생활이 먼저 평탄하지가 않았다. 구조조정이고 누가 나가고 매니저가 어쩌고 저쩌고 간에, 팀이 15명이나 되는데 다들 자기 것 하기 바빠 하루에 한 번 슬랙에서 채팅을 누가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기도 힘들다. 기록을 보니,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가 1주일 전인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커머셜에서 우리의 원조 멤버였던 고위리더급의 디자이너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다는 소식이 또 들려왔다. 가뜩이나, 회사 구조조정 동시에, 다른 팀 10명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와 한배를 탔다며 이러쿵저러쿵하는 통이었는데, Quit이라니... 심난했다. 


여하튼 나의 팀은 아니었지만, 그냥 싱숭생숭 마음이 복잡했다. 내 자리는 끄떡없고, 당장 내가 잘릴일은 절대 없겠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팀이라니,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싶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팀 내의 분위기와 협업이 이렇게나 불안 불안한데, 어딜 가더라도 그 팀에 그 멤버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심난하면 심난한 대로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은 문제집은 내 머리에서 둥둥둥 하루종일 떠다녔다. 그리고 하루종일 조깅할 때나 올법한 심장박동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심장은 멈출 줄을 모르고, 머리도 멈추기는커녕 밤만 되면 기관차처럼 폭주하니, 잠이 올리가 만무했다.


겨우겨우 필요시를 먹고 잠에 드니, 개운은 하지만, 중독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14알에서 3알로 금세 줄어들었다.


최근 엄지손톱, 엄지발톱 주변의 살이 너덜너덜하다. 

발톱을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뜯다가, 푹, 피가 났다. 그냥 지나가는 피려니 했는데, 어느새 발톱 주름 사이사이로 피가 흥건하게 번졌다. 그리고 충격이었던 나는, 나중에 보고 더충격받으라고 나오는 피를 닥지도 않고, 굳어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내 불안증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조용히 깨닫고 있었다.


테라피 선생님과의 1시간, 오랜만에 선생님을 보고 울었다. 힘들었다고, 왜 이렇게 불안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이 불안에 대해서 말을 하고 표현한다고 해서 당장 불안이 평안으로 해결되는 게 아닌데도,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이 불안증은 다시금 끝도 없는 지하를 걷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다 뜬금없는 2가지의 문장, 그것도 내 직속라인매니저도 아닌, 영국매니저(?)에게서 들려온 문장들이 나의 불안한 뇌를 깨웠다. 


1. 그 불안을 유발하는 것이 너의 Job에 영향을 끼치나?
2. 그 불안을 유발하는 무언가를 네가 어떻게, 너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대답이 "아니요" 라면, Don't give a shit.

그냥 문장으로 봐도, 매니저에게 처음으로 들었을 때도, 정말 별것 없는 문장들인데, 내 조촐하고 불안에 덜덜 떠는 뇌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이 중요하고 쉬운 문장들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냉혈한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동정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말라라는 것이 아니고,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에 목매달지 말라는 뜻으로 그는 문장을 마쳤다. 


머리에 온갖 것이 떠다니고, 떠다니는 그 무언가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안 그래도 힘들게 나를 괴롭히것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까지 가져와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으니, 마치 내가 나 스스로 문제를 키우고 만드는 꼴이 되었다. 


당장 내 눈에 닥친 문제, 

디자이너가 나가는 것이 내 일에 영향을 끼치는가? ; 당장 내일에는 문제없다. 

그럼 이 quitting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 아니오. 

그럼 이문제는 패스.


내 라인 매니저인 줄리가 도통 나와 미팅을 하지도 않고, 온라인에도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 팀에 뭔가 기둥이 돼줄 법도 한데 안 돼 주는 이 불편한 상황, 내 일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치는가? ; 멘털이나 감정은 흔들릴 수 있으나, 그녀에게서 내가 당장 피드백을 받아야 할 상황은 없다. 

그럼 내가 줄리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 HR에 쪼르르 달려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야 있지만, 내 시간과 내 에너지가 많이 나갈 것이다.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이것도 패스.


아 나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들고, 심장박동을 거세게 만들었던 문제가 이렇게 푸니, 너무 직관적이다. 그래서 좀 허무하다. 


습관은 참 무섭다.

당장 지금이야 이렇게 쓰고, 생각하고, 듣고 아 그렇구나 할 테지만, 내일이면 또 싹 없어질 이 생각들...

하지만, 당장 손발의 땀을 줄이고, 심장을 차분하게 만들려면 어쩔 수 없다. 연습해야 한다. 


2개 질문을 꼭꼭 메모지에 적고 컴퓨터 모니터에 붙였다. 

그리고 Don't give a shit까지 마무리.


가는 신경을 딱! 잘라버릴 용기와 습관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