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3
일주일 중에 금요일은 장 보러 가는 날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목요일 밤만 되면 우리 집 냉장고는 휑하다.
간식, 음료, 물, 우유, 야채, 과일 등등 이것저것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것들이 어느새 휙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회사 offline과 동시에 에코백과 냉장/냉동 가방을 한 개씩 들고 우리는 장을 보러 간다.
항상 가는 루틴이 있다. 무조건 M&S 먼저 갔다가 Tesco로 향한다.
M&S가 테스코보다는 상당이 좁은 편인데,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주차장이며 m&s전용 카페며 뭐며, 심지어 Disability 전용 주차장까지 꽉꽉 차, 도저히 들어갈 제간이 없기 때문이다.
M&S에 파란색 냉동 에코백 하나 들고 입장과 동시에, 나는 딸기를 잽싸게 낚아채듯이 한팩 넣고, 채소칸으로 바로 향한다, 그리고 양배추, 양상추 하나씩, 감자도 하나. 대니는 항상 그렇듯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위한 한 파인트에 350칼로리밖에 하지 않는 저칼로리용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는 그와 동시에 베이커리 칸으로 가서 막 구워낸 것 같은 모양인 스콘을 하나 들고 그렇게 우리는 똑같은 복도와 섹션을 돌고,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self checkout칸으로 가 계산한다.
테스코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의 일주일치 장의 아이템은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가격도 비슷하다. Cost of living 위기 때문에, 이전에 50파운드 정도 되었던 장보기의 총비용이 20파운드씩이나 올라간 것은 놀랄 노 자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는 오래다.
가끔, 대니의 누나 (시누이?)가 테스코에서 일하는 날이면 항상 그쪽으로 들러보는데, 언제나 우리가 들르면 물어보는 질문이 같다.
"오늘은 뭐 담았어?" 그럼 대답하는 질문도 같다. "똑같지 뭐." 그럼 무슨 재방송 에피소드 찍듯이 나오는 대꾸도 같다. "너네는 이게 지겹지도 않냐. 다른 것 좀 보고 사."
그럼 그 대꾸에 다시금 대꾸하는 우리의 대답도 같다.
"뭐 하러. 이게 좋아."
내 하루, 대니의 하루
내 선택, 대니의 선택, 그리고 우리 집의 선택
내가 사는 것, 대니가 사는 것, 우리 집을 위해서 사는 것. 등등
나에겐, 우리 집에는 표면적으로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우리가 만들고 채워나간 것이어서 아깝거나, 슬프거나, 아쉽지 않다.
이렇게 없는 선택지가 축복이고, 편안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요 근래 얼마되지 않아 내 머리에 앉았다.
Blessing of Choice가 아니고 Blessing of no choice 가 내 삶의 한 문장 되겠다.
선택의 패러독스 (The paradox of choice)라는 책도 있다. 아마 일분일초마다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 안타까운 결정장애의 인간들을 위해서 나온 책일 듯하다. 언제나 짜장 짬뽕 어떤 거? 아이스 아니면 핫? 찬물 따뜻한 물? 이렇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노인 우리들은, 안타깝게도 21세기에 들어서서 디지털 혁명과 information overload 등의 의해서 2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열 백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다.
천상 게으르고, 변화를 싫어하는 나는, 심각한 정도의 결정장애를 다행히도 앓지는 않았지만, 가뿐하고 상큼하게 선택해 놓고, 아. 이게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 다시 바꾸기는 싫은데... 아 저것이 더 좋아 보이는데? 등등 머리 아픈 생각들을 항상 한다.
결정으로 인한 장애의 시퀀스가, 선택의 앞이냐 뒤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10대 20대 중후반까지도 나는 항상 게으른 나를 싫어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찾아가 보고 맛보고 즐기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이것저것 맛집도 새로운 곳 찾아내 인스타에도 올리고, 경험도 많이 해보것만, 내가 하는 건 고작 저 길건너편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맛보는 것도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에는 안 나는 게 다라니, 이런 쓸데없고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20대라니.... 이유는 간단했다. 그 건너편 카페의 커피가 맛이 x 같으면 내 인생자체가 싫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30대에 접어들고도 남은, 이제의 나는, 저런 선택지가 내 앞에 널려 널려 있어도, "나만의 Range"가 있다는 이 삶의 패턴이 좋다. 편하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가끔 내가 이런 좁디좁은 선택지와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게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내 하루의 루틴도 같다. 조금 다르다면, 아침에 커피 아니면 차, 저녁에 밥 아니면 밀가루음식 이렇게 나뉘겠다. 결국 그것마저도 월수금 화목토 혹은 vice versa로 패턴이 비슷하다.
이 삶 말고도 다른 더 좋은 더 판타스틱한 더 어드벤처로 가득 찬 그런 삶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삶을 내가 스스로 내버리는 것이라면 어쩌지? 왜 나는 더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은 이미 져버린 지 오래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밖에도 나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정말 적어도 항상 매일 하는 요가를 밖에 나가서 요가 수업이라도 들었다면 내 삶은 더 풍요로울 수도 있다. 그렇게 원하던 30대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겠지. 2년 넘게 산 이곳도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 아니면, 병원 주변 말고는 가본 적이 없는데, 더 나아가서 걷고 걸어 다른 곳 진주 같은 곳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결국 이것도 나의 선택이고, 이 선택에 굉장히 만족하고 편안해하는 내 몸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아쉽지 않다. 내가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편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하고 싶다면, 선택을 언젠가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만족한다.
아직, 나는 나의 선택에 불만 없다.
그리고 이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그렇게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