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흔히들 아는 초록창 사이트엔 200만이 넘는 사람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주 유명한 유럽 온라인 카페가 있다. 온라인 카페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일은 정보공유 또는 동행 구하기다. 혼자 여행하기 무섭거나, 유명한 식당을 혼자 가긴 아쉽다거나 등의 이유로 동행을 구한다는 글들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 대학생 때 다녀왔던 유럽여행에서도 나 또한 비슷한 류의 글을 올려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만났던 동행들이라 함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었기에 난 동행 글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 여행에도 마찬가지로 동행을 구할 일이 생겼다.
'0월 0일 0시에 00 광장에서 모이실 분 구합니다 : )'
시차 적응에 못 이겨 끼니를 제 때 못 맞추고 있던 어느 날, 블로그에서 본 스페인 유명 레스토랑의 꿀 대구가 먹고 싶어 졌다. 찾다보니 메뉴 한 개만 먹고 나오기엔 맛있어 보이는 메뉴가 많은 식당이라 여김 없이 온라인 카페에 동행 글을 올렸고 그렇게 한국인 2명을 만났다. 30대 초반의 나보다 언니였던 그분은 교직에 재직 중이셨고, 다른 한 분은 직업이 의사라며 본인을 소개하던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편의상 쓰앵님 언니, 의사 오빠라 칭하겠습니다^^) 우리는 오후 5~6시경에 만나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다행히 붐비지 않았고 우린 바로 착석할 수 있었다. 메뉴 주문 후 음식을 기다리던 중에 A언니가 먼저 질문을 던졌고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쓰앵님 언니 : 혹시 스페인에 C도시 가봤어요? 스페인 도시 중에 저는 그곳이 제일 좋더라고요.
의사 오빠 : C도시 거기 재미없던데 뭐 볼 것도 없고...
쓰앵님 언니 : 그럼 D도시는 가보셨어요? 어때요? 전 다음 주에 D도시로 넘어가거든요.
의사 오빠 : 가봤는데 거기도 별로였어요. 루트를 잘 못 짜셨네. D도시 가지 말고 E도시 가요. 그래야 스페인 갔다 왔다고 어디 가서 말이라도 하지.
쓰앵님 언니, 나 :...
저 대화를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오가지 않았고 일방적인 그의 소통만 있었을 뿐이었다.
· 불편한 트레블러
내가 여행 중 만나기 싫은 유형은 내가 좋아하는 도시를 별 볼 것도 없는 도시로 만들면서 시간을 낭비했다느니, 자신의 여행담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어버리는 등 나의 여행을 평가하고 저울질하며 자신의 여행담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전혀 없지만 그건 개의치 않다는 것처럼 굳이 내 테이블까지 넘어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야 속이 시원한 그들을 나는 만나고 싶지 않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을 모두 하나같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여행 꼰대'는 존재했다. 온라인에서 동행을 구한다는 것부터 안전하지 못하며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반드시 운도 따라줘야 한다. 그래서 평소엔 동행글을 잘 올리지않는다. 숙소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행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고 그때마다 나는 제발 여행 꼰대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나 또한 여행을 하면서 '이곳이 좋았어, 저곳이 좋았어'라고 떠들어대는 때가 있지만 그조차도 상대방이 먼저 묻질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때론 나에게 여행지를 추천받고자 '어떤 여행지가 제일 좋았냐라'고 나에게 묻곤 하는 사람들에겐 지극히 주관적인 최애 여행지들을 이야기해주지만 반드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건 분명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너에겐 어쩌면 최악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으니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해.
어쨌거나 나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저녁식사는 의사 오빠의 잘남을 듣느라 꿀 대구 위에 올라간 소스가 무엇인지, 이 곳에서 마신 샹그리아의 맛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20대에 어떻게 전공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나이 계산을 하느라 바빴다.) 비록 스페인에서의 첫번째 근사한 저녁식사가 그렇게 지나가버렸지만 다시 한번 속으로 다짐했다.
절대로 여행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