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어함박눈 May 11. 2020

호객행위를 무시하는 방법

모로코, 마라케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2주가 지난 어느 날,
숙소에서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빈대(Bedbug)에게 물렸다.


처음엔 모기가 '여기가 뷔페다!' 하면서 내 종아리를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잠을 못 잘 정도로 간지러움이 심해졌다. 약국에 가서 약사에 종아리를 보여주자 빈대(Bedbug)에게 물린 것 같다며 연고를 하나 건네주었다. 연고의 가격은 나의 하룻밤 숙소비가 맞먹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직원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숙소에 빈대가 있을 리 없다며 거부했다. 빨개진 나의 종아리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올라(Hola) 스페인 :)

그 날 나는 밤새 호스텔 로비에서 성난 마음을 가라앉히며 숙소 예약 어플에 솔직하고 이성적인(?) 리뷰를 적었고 다음 날이 되자 다른 숙소로 짐을 날랐다. 하지만 숙소를 옮겨도 나의 간지러움은 멈추질 않았고, 문득 스페인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아 졌다.

그래서 구글 맵을 켜고 두 번째로 떠날 나라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 철학은 '발길 닿는 대로'였기에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한 나라는 아프리카, 모로코였다. 모로코라는 나라에 대해선 아는 건 사하라 사막밖에 없었고 혼자 가려니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50만 원가량의 예방접종의 결과로 내 몸에는 여러 종류의 항체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때까지는) 충분한 돈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자신감을 갖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간지러움을 꾹 참고 도착한 모로코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다.


이상하리만치 동양인이 보이지 않았던 마라케시에선 동양인 여성이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게 매우 눈에 띄는 일이었는지 주변에 다른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굳이 나에게로 와서 말을 걸어댔다. 40~50대로 돼 보이는 몇몇 모로코인들은 낙타 몇 마리를 줄 테니(나한테 낙타가 있어봤자 뭘 한다고..) 결혼하자며 다가왔고, 등 뒤로 휘파람과 *캣 콜링이 들려오는 건 다반사였다. 결정적으로 8세 이하정도 돼 보이던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다리를 다친 이후로 더더욱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캣 콜링 : 지나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의 시끄러운 휘파람 소리 또는 성적인 발언(출처:옥스퍼드 사전 정의)

가지각색의 호객행위를 뚫고 사온 먹을거리 ㅠㅠ

여행을 하면서 간혹 예민해질 때가 있다. 때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대게 몸이 아프거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한 일을 겪었을 때였다. 그때마다 든 생각은 하필이면 왜 여행 중에도 예민하냐는 것이다.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보고자 떠난 여행에서도 또다시 예민한 나를 마주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느냐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빈대에게 물려 생긴 흉터를 보고 매일 밤 샤워를 하면서 속상해한다면 2주간 머물렀던 스페인은 빈대로만 기억될 것이다. 모로코도 마찬가지다. 갖은 호객행위와 캣 콜링에 시달려 매일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면 난 또 모로코를 불쾌한 나라라며 치부해버릴 게 뻔했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오래 머금고 있으면 나만 손해였다.


그래서 나는 어렵더라도 빨리 떨쳐버리려 하는 편이다. 여행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고 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리고 하다못해 의. 식. 주 모든 것에 나의 소중한 한 푼 한 푼이 나가는데 그런 것들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는 것조차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들을 무시하려 애썼고, 애를 쓰다 보니 그들을 무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혼자서 멘탈 싸움을 하던 중 우연히 길거리에서 한국인 여성(=단발머리 동생)을 만났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자 경계심은 풀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에 코브라를 강아지처럼 데리고 나오는 그런 낯선 풍경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렵사리 만난 나의 소중한 단발머리 동생이 내일 사하라 사막으로 간다며 일정이 없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안 그래도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싶었던 나는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다음 날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에서 동행을 구하면 생기는 일(feat.여행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