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사하라 사막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생텍쥐페리
마라케시에서 우연히 만난 단발머리 동생과 함께 사하라 사막이 있는 도시, 하실라비드로 향했다. 마라케시에서 하실라비드까지는 버스로 장장 12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10시경, 드디어 버스가 멈췄고 도시는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데도 밝았다.
알고 보니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엔 (당연한 말이지만)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달빛이 너무 밝아서 별빛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라나 별 사진을 찍기 위해선 보름달이 뜨는 날을 피한다는 사실을 나는 사하라 사막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보름달이 뭔 대수냐 싶지만 사실 SNS에 올라오는 사하라 사막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그런 사진을 건지고 싶었다. 평소엔 사진 욕심이 없던 나였지만 밤하늘과 사막 배경의 사진이라니! 이건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밤하늘이라기엔 너무나 밝은 빛 때문에 혹시나 하고 찍어본 사진들은 사람인지 낙탄 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고, 무엇보다 사진에 대해선 무지했던 내가 카메라를 잘 다뤘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몇 장 찍고는 카메라의 전원을 꺼버리고 말았다.
인생 샷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기운이 빠진 채로 잠이나 자야겠다며 텐트로 돌아가던 길에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준 투어 업체 사장인 사이드(Said)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고 "What's the matter?(무슨 일이야?)"라며 물었고 별을 제대로 못 봐서 속상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이드는
'Waiting for the moon to rise! (달이 질 때까지 기다려)!'
라고 했다. 해가 진다는 건 많이 들어봤어도 달이지는 건 난생처음 들어 본 표현이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사이드는 웃으면서 오늘은 새벽 2~3시쯤이면 달이 질 것 같으니깐, 그때까지 기다리면 은하수를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어차피 12시간 내내 버스에서 잠만 잤던 나였기에 새벽까지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텐트에서 만난 동생들과 함께 다시 사막 언저리에 올라갔고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사이드의 말처럼 동그란 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후 나는 바라던 은하수를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달이 지기까지 기다리기
사실 마라케시에 있은 지 2일도 안되었던 참이었고, 충분한 여유를 가진 뒤에 가고 싶던 사막이었지만 급작스럽게 가야만 했던 이유는 근래 잊으려 했던 현실이 생각나서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요즘 취직하기가 어렵다던데', '퇴사가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등의 온갖 잡생각이 들었고 용기가 있다가도 없어졌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때때로 현실로 돌아왔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바빠졌다. 그래서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사막으로 떠나면 잡생각들이 사라질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사막에서도 사이드의 말을 믿지 못하고 '정말 달이 제시간에 지긴 한 걸까', '지금 보는 별의 수만큼 달이 져도 같은 모습이진 않을까'하는 의심 속에서 별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은 이내 하늘에서 사라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별들은 빛을 맘껏 뽐냈다
가끔은 나를 둘러싼 환경때문에 마음이 이리 저리 흔들릴 때가 있다. 이러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상상력이 발휘되고 그 끝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차게 된다. 불필요한 마음들의 상호작용때문에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점차 닳아없어지게 되고 부정적인 것들에 심취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찾아내고 행동하려한다. 가령 모로코에서처럼 무작정 자연을 찾아 떠난다던지, 친구를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지 등의 환경을 바꾸려고 할 때가 있다. 이런 노력들은 꽤나 나에게 도움이 된다.
사막에서도 온갖 잡생각을 떨쳐내지 못할 때,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금의 내 상황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별을 볼 수 있을까 했던 의심의 끝은 은하수였고 새벽 2~3시까지 기다리는 동안 했던 동생들과의 대화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결국은 만날 수 있었던 은하수처럼 문득 이 여행의 끝에서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일상도 나쁘지만은 않을,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내 마음은 고요하리만큼 가라앉았고 다시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하라 사막으로부터 위로받는 첫 번째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