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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어함박눈 Mar 09. 2021

38.5℃와 함께한 크리스마스(1)

아랍 에미레이트, 두바이 그리고 아부다비

이 글을 시작하기 전, 그다지 흥미롭진 않겠지만 제목에 대해서 잠깐 논해보고자 한다. 제목을 읽고 누군가는 '여행할 당시의 아랍 에미레이트 기온이 38.5℃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또는 '더운 나라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였으니 특별함을 담아 지은 제목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38.5℃는 크리스마스 당일, 나의 체온이었다.
한국만큼이나 높은 건물이 많았던 두바이

그리스에서 맛있는 식행(行)을 마무리하고 난 뒤, 나는 (저번 글에서 넌지시 언급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랍 에미레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배낭여행자에게 빠질 수 없는 공항 노숙과 함께. 기나긴 40시간의 이동을 끝내고 도착한 숙소는 10인 이상이 함께 몸을 비비며 잠드는 도미토리룸이 아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심지어 세탁기가 방 안에 있을 정도로 호화스러운 스위트 룸에 도착했다. 이제야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는 (당시의) 남자 친구였고, 서로가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둘만의 시간이 간절하게 필요했기에 돈을 쓰더라도 원 없이(?) 연애를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사랑이 가득 담긴 코리아 푸드트럭 :)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있던 우리 둘은 4개월 만에 아랍 에미레이트의 중심 두바이에서 서로를 마주했고 앞으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꾸밀지 등 행복한 고민들에 둘러싸인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이 무색할만치로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아니 내가 이제껏 경험해 온 크리스마스 중 가장 최악의 크리스마스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끔찍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

12월의 두바이는 매우 덥다.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나는 가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단순히 체온의 온도와 주변의 온도가 달라서일 때기도 하고,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찌릿하며 소름 끼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순간은 공포영화 속 주인공이 등 뒤에 누군가 서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듯, 내가 걱정하고 있던 것들이 느린 속도로 하나 둘 현실로 다가올 때다.

12월의 두바이는 매우매우 덥다.

하루는 숙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문득 12월의 터키와 아랍 에미레이트의 기온 차가 크다는 사실이 걱정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는데 여행의 짬밥을 운운하며 넘겼다. 또 하루는 모처럼 믿음직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간 쌓였던 긴장이 풀어지면서 차츰 몸의 통증이 오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그저 가벼운 증상이라 생각하며 억지로 흘려보냈다. 이러한 신호들을 내가 무시했기 때문일까, 아니 애초에 내가 알았더라도 막아낼 순 있었던 것일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터키에서, 그것도 크리스마스 당일에 '실신'이란 걸 경험했다.

* 이 글은 38.5와 함께한 크리스마스(2)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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